[한마당-한민수] 손학규와 자장면

입력 2016-08-09 19:03 수정 2016-08-10 16:21

2000년 5월 총재 선출을 앞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는 ‘이회창 대세론’이 불었다. 한 달 전 16대 총선에서 승리한 이 총재는 유력 대권 주자였고 그의 총재 재출마는 물론 당선에도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그때 손학규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오찬기자간담회에서 “왜 (낙선이 뻔한데) 출마하느냐”고 물었다. “중국집에 가면 팔보채와 탕수육만 있습니까? 자장면과 짬뽕도 있잖아요?” 결과는 이회창의 압도적 당선이었지만 그의 도전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개혁 성향인 손학규는 보수정당에서 겉돌았다. 그래서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보따리장수’처럼 정치를 한다고 비판했다. 이후 이 말은 민주당 계열에서 손학규를 규정짓는 프레임이 돼 버렸다.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도, 당대표 선거에 나가도 친노와 구 민주당 진영은 정체성을 물고 늘어졌다. 겨우 극복했지만 2008년 4월 당대표로 치른 총선에서 패하자 대표직을 사임하고 2년 넘게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했고, 2014년 7월 보궐선거에 나와 지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당시의 책임지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또 감동을 줬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정계복귀를 앞두고 있다. 솔직히 복귀를 이미 한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하겠다는 것인지가 애매하다. 지지자 모임에선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고 말했다. 신문 제목은 ‘손학규 사실상 정계복귀 선언’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한 행사장에서 만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빨리 돌아오라”고 하자 웃기만 했다.

그는 지금 복귀 명분과 방식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한번 떠났던 정치판에 돌아오려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더민주로 갈지, 국민의당으로 갈지, 아니면 제3지대를 만들지도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좋을 게 없다. ‘국민음식’ 자장면이 언제 가장 맛이 없는지 아는가. 바로 오래 불어 터졌을 때다. 한민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