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기호] 평론의 윤리

입력 2016-08-09 18:33

영화는 너무 많고 영화에 대해선 잘 모르니 극장에 가기 전엔 곧잘 그쪽 방면 평론가들의 의견을 읽어본다. 평론가들이 무슨 빈 소년합창단처럼 입 맞추어 극찬한 영화가 있으면 대체로 꼭 따라 보는 편인데, 그건 내가 그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영화에 대해서라면 나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한 사람들일 테고, 또 어떤 검증을 통과한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실제로 나는 어느 한 영화평론가가 특정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무려 다섯 번이나 그 작품을 반복해서 돌려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아, 그러니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던 것이다. 취향에도 위계가 있구나, 그것 또한 시간과 노력이 만들어내는 거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의견이 나의 감상과 부합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칸이나 선댄스 같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일수록 더 그러한데, 극장에서 반쯤 졸다가 나와서, 으응, 이게 뭐가 좋다는 거지, 의문을 품었던 적도 꽤 있었다. 그럴 때면 다시 그들의 글을 찾아보곤 했는데, 다투어볼 여지가 있는 입장도 있었지만 더 많은 부분 나의 무식을 깨닫고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꼬리를 내리곤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평론가들의 시선이 영화의 세목에까지, 그러니까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색감이나 음악, 의상에까지 가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의 글이 구체성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어 있었다는 뜻인데, 그럴 때 나는 영화 평론을 읽는 즐거움을 느낀다(가장 읽는 기쁨을 크게 느낄 때는 평론가끼리의 의견이 달라서 서로 다른 구체성으로 다툴 때이다).

만약 그들이 구체성이 아닌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문장만으로 영화를 호평했다면 나는 그 영화들을 보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도 철회했을 것이다.

요 며칠 동안 나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를 보러 갈까 말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서두가 길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 영화 또한 내가 신뢰하는 한 평론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봤는데, 그다지 썩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평가를 내린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캐릭터 문제, 전투 장면의 CG와 육군 전투의 스케일 문제, 서스펜스의 기시감과 영화 종영 부분에 올라오는 느닷없는 자막에 이르기까지 꽤 구체적이었다.

물론 그의 말만 듣고 판단을 내릴 수 없어서 다른 기사들도 찾아봤는데, 그것 참,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입장들이 꽤 많았다. 그것들은 대부분 영화의 편에 서서 평론가를 공격하는 글들이었는데, 이유는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네들이 뭔데 호국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을 폄훼하느냐’ ‘이념적으로 삐딱하게 영화를 보는 좌편향 시선이다’ 등등.

내가 당황했던 것은 CG에 대해 말할 때 호국영웅들로 답하고, 캐릭터의 개연성에 대해 질문할 때 좌편향 시선을 문제 삼는 지점이었다. 이건 말하자면 세탁기의 탈수 문제를 제기했는데, 아이 그냥 국산 제품이니까 토 달지 말고 그냥 써요, 라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는 답변이었다.

물론 평론가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한 작품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충돌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윤리는 관객 수가 아닌 구체성이다. 구체적인 질문과 구체적인 답변. 이것들이 없는 쪽의 공격은 의견이라는 명목 아래 무언가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한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마케팅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이 내가 ‘인천상륙작전’을 보러 가는 데 주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이기호(광주대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