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 터주기? 긁어 부스럼?… 제1야당 외교력 시험대

입력 2016-08-09 00:40
이른 아침 김포공항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정부·여당의 대대적인 비판에다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당내 따가운 시선까지 모두 짊어지고 떠나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방중 길이었다. 중국행을 주도한 김영호 의원은 8일 기자들에게 “청와대의 입장 표명 이후 마음이 상당히 무겁고 사명감도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냉각기에 빠져드는 한·중 외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가는 것”이라며 “충분히 준비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더민주 초선 의원 6명(김영호 김병욱 박정 소병훈 손혜원 신동근)의 중국 방문은 제1야당의 정치력과 외교력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방중 성과에 따라 의욕만 앞선 초선들의 치기어린 행보로 끝날 수도, 경색된 한·중 관계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주변 환경은 녹록지 않다. 최근 중국 관영 언론들의 공세를 감안하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야당 의원들의 방중’은 일거수일투족이 중국 당국의 입맛에 따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국내 여론이 양분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 그 책임은 더민주에 돌아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공항엔 보수단체인 활빈단 회원들이 나와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 군사주권! 북핵 미사일 방어용!’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매국노 짓을 그따위로 해대” “너희들이 국회의원이 맞아”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공식 일정은 국제정치 교수들과의 좌담회, 교민 간담회 등이 전부다.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정은 제외하다 보니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더민주 의원들은 현지에서 사드 배치에 관한 의견은 피력하지 않기로 했지만 말실수나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이 나올 경우 예상치 못한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미 방중 멤버인 손 의원이 출국 전 페이스북에 쓴 글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손 의원은 “베이징대 세미나가 있다는 공지를 보고 단순한 생각으로 신청했다가 졸지에 ‘독수리 6남매’가 됐다”고 썼다. 이어 사드 배치 결사반대 10만 청원운동 사이트를 링크해놓고 “수요일 서울 오기 전까지 10만 서명 채워 달라”고 했다.

더민주 지도부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방중에 반대 의견을 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이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방중 단장격인 김 의원은 한·중 수교 이전부터 중국에서 공부해 인맥이 풍부하고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만큼 한번 지켜보자”고 했다. 다만 문재인 전 대표는 트위터에 초선들의 방중에 대한 청와대의 문제 제기에 대해 “노력하는 야당 초선 의원들을 비난부터 하니 참 한심한 정부”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는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가 훼손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사드 배치가 현실화되더라도 정부는 최선을 다해 중국을 설득하고 관계 악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방중에 신중론을 폈던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더민주 의원들이 국익에 맞는 품위 있는 언행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힘을 실었다. 박 대표는 “외교가 가장 중요한 때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건 결국 막장으로 끌고 가자는 것”이라며 “청와대는 마지막 결정을 해야지 만기친람해서 한·중 대결로 치닫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청와대의 작심 비판 이후 사드를 둘러싼 두 야당의 균열이 메워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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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