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문가 카이로프랙틱 치료 ‘멀고 먼 길’

입력 2016-08-09 04:15

미국 팔머 카이로프랙틱 대학교에서 3년 동안 공부한 안모(42)씨는 2005년 자격증과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이듬해 귀국한 그는 종합병원, 한의원 등에서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시작했다. 카이로프랙틱은 틀어진 척추와 골반을 손으로 교정해 허리디스크 같은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선 ‘도수(徒手·맨손) 치료’라고 불린다. 안씨는 ‘전문가’라는 자부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안씨는 5년 만에 범법자가 됐다. 안씨가 일하던 한의원 근처에 있던 다른 한의원 측이 2011년 그를 고소했다. 현행 의료법은 ‘비의료인’(의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를 제외한 사람)이 카이로프랙틱을 포함한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2012년 대법원은 안씨에게 벌금 500만원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안씨에겐 더는 자부심도 기대감도 남아 있지 않다.

‘카이로프랙틱 규제’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시장과 수요가 있고, 관련 자격증을 지닌 전문가도 있지만 법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가 과잉 규제로 판단하고 규제개혁을 약속했지만 차일피일이다. 이러는 와중에 전문 자격증을 딴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비전문가가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하는 등 부작용도 속출한다.

8일 대한카이로프랙틱협회에 따르면 해외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는 약 200명이다. 이들의 카이로프랙틱 치료 행위는 여전히 불법이다. 올해에만 4명의 카이로프랙틱 치료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당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의료 현장에선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의료법에선 의사나 의사의 지도를 받은 물리치료사의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허용한다. 정형외과, 신경외과에선 물리치료사가 도수치료라는 이름으로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하고 있다. 통상 이들은 6∼30시간 비공인 과정의 교육을 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의료인의 경우 4400시간, 의료인의 경우 2200시간 교육을 이수한 뒤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하도록 권장한다.

정부는 2014년 12월 카이로프랙틱 관련 규제를 ‘규제 기요틴(단두대)’ 과제로 선정했다.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해 문턱을 낮추겠다는 생각이었다.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를 새로운 직업군으로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안전성, 면허제도 혼란을 근거로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 치료 허용’을 반대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8일 “위험한 치료일 수 있는데 의료 지식이 부족한 비의료인이 치료하다보면 의료사고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어도 한국에서 병원을 못 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 규제는 ‘중장기 검토 과제’로 전환됐다. 규제 개선의 결과물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보건의료연구원에 맡긴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더라도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 치료 허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