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사는 장모(50)씨는 8일 새벽 한국과 독일의 올림픽 축구경기를 보고 있는 고교 3학년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려다 꾹 참았다.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마음만 먹으면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를 참아내야 하는 아들이 측은하기도 했다. 후반전은 함께 보며 대화 시간으로 활용했다. 출근길에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해대는 아이를 학원으로 바래다준 뒤 아직 많이 남은 올림픽 기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11월 17일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9일로 딱 100일 남게 됐다. 수험생들은 자신이 세워놓은 학습 전략을 차분히 실천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시기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난 6일 개막한 하계올림픽은 수험생들에게 넘기 쉽지 않은 유혹이다.
삼수생 최모(21)씨는 올림픽에 맞춰 공부 시간표를 새로 짰다. 새벽 경기가 있는 날은 전날 미리 앞당겨 공부를 해놓고, 일찍 잠자리에 든 뒤 새벽에 일어나 경기를 보는 방식이다. 독일과의 축구 예선전은 물론이고 개막 당일 밤늦게 끝난 여자배구 한·일전도 챙겨봤다. 고3 때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경험을 살린 결정이었다. 최씨는 “고3 때는 시험에 방해될까봐 경기를 철저히 외면했는데 오히려 독이 됐었다”며 “안 보고 공부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차라리 볼 경기 보고 공부에 집중하는 걸 택했다. 다만 올림픽 초기여서 효과적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 학원가에서는 ‘올림픽 시계’에 맞춰 수업 시간이 조정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입시 학원은 8일 오전 9시로 예정됐던 ‘고3 수학 특강’을 오후 2시로 미뤘다. 특강을 듣는 아이들이 독일과의 축구 예선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새벽 4시부터 경기를 보려면 일찍 자거나 아예 밤을 새워야 하는데 오전 특강은 집중하기 어려우니 미뤄 달라는 요구였다. 학원 관계자는 “다른 아이들도 동의해서 미뤘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대표팀이 선전하면 이런 일이 종종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재진 진병원 원장은 “수험생이라면 수능 시험시간에 두뇌 회전이 가장 빠르도록 생체시계를 조절해 놔야 한다”며 “올림픽 새벽경기 등에 생체시계가 맞춰지면 올림픽 이후에 해외 시차적응처럼 일주일가량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이도경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기획] 수능 어느새 100일 앞으로… 참을 수 없는 ‘올림픽 유혹’ 생체리듬 깨지지 않게 주의
입력 2016-08-09 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