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위한 사랑의 힘… 주부 力士, 기적을 들다

입력 2016-08-08 17:42 수정 2016-08-08 23:42
‘주부 역사’ 윤진희가 7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파빌리온2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역도 여자 53㎏급 인상경기에서 힘차게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9일 역도 남자 69㎏급에 출전하는 남편 원정식.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7일 오후 4시40분(이하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리우센트루 파빌리온2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역도 53㎏급 금·은·동메달 색깔이 결정된 시간. 근육질이지만 결코 우람하지 않은 동양인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웃음으로 번진 윤진희(30·경북개발공사)의 입가에선 벅찬 말들이 흘러나왔다. “하늘이 제게 선물을 준 거라 생각해요.”

윤진희는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웃음과 울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한꺼번에 피어오르는 듯했다. 8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땄던 은메달, 대표팀 후배였던 원정식(26·고양시청)과의 운명적인 사랑과 결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라임(4), 라율(2) 두 딸의 출산·양육, 남편의 부상, 그리고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3년 전부터 다시 들어올렸던 바벨….

이날 윤진희는 인상 88㎏, 용상 111㎏, 합계 199㎏을 기록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신의 올림픽 두 번째 메달이자 2008년 베이징대회 이후 ‘노메달’ 수모를 당하던 한국 역도의 쾌거였다.

그녀는 ‘주부 역사’다. 장미란 사재혁과 함께 한국 역도의 전성기를 이끌다 2012년 결혼과 동시에 바벨을 내려놨다. 주부의 삶을 살던 그녀가 다시 역도의 세계로 돌아온 건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다. 원정식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역도 69㎏급에 출전했다가 무릎 부상을 당했다. 낙담한 남편에게 힘을 주기 위해 그녀는 매일 함께 역기를 들었다.

극적인 동메달이었다. 합계 200㎏을 기록한 디아스 하이딜린(필리핀)에게 1㎏ 차이로 밀려 4위에 그쳤다. 그러나 세계 최강자 리야쥔(중국)이 용상 1∼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해 실격 처리되면서 기적처럼 3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녀는 올림픽에 나서기 전 한국에서 “긴 공백기가 있었지만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했었다. “꼭 남편과 함께 좋은 결과를 얻고 금의환향하고 싶다”고도 했다.

윤진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재혼해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 했다. 원주여고 재학 시절 할머니마저 잃고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오로지 역도에 매진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남편 덕분이었다. 원정식은 한국체대 후배였다. 삶이 고달플 때마다 원정식은 윤진희의 옆을 항상 지켰다.

원정식은 아내가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자 목청이 터지도록 ‘윤진희’를 외쳤다. 윤진희는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관중석의 남편을 찾아 동메달을 목에 걸어줬다. 그리곤 또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이 사람도 모레 경기가 있어서 오늘 경기장에 오지 않길 바랐어요. 와줘서 고맙고 (더 좋은 성적을 못 내) 미안합니다.”

많이 흘린 눈물 때문에 윤진희의 눈은 충혈됐다. 그래도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제 평생 곁을 지켜준 남편 차례다. 하루 뒤면 원정식이 역도 69㎏급에 출전한다. 부부는 또 이곳에서 감동의 드라마를 쓸 것이다. 남편이 메달을 따지 못한다 해도 아내는 남편을 꼭 안아줄 게 틀림없다. 올림픽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운동하느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라임이와 라율이를 따뜻하게 안아줄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모규엽 기자, 박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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