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의 계산된 카드?… 아베 ‘개헌’ 견제說

입력 2016-08-08 17:42 수정 2016-08-08 21:38
아키히토 일왕이 조기 퇴위에 대한 의사를 밝히는 영상이 8일 오후 도쿄시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방송되고 있다. AP뉴시스
일본 왕족들이 지난해 11월 12일 도쿄 아카사카 왕궁에서 열린 왕실 주최 가을 정원파티에 참석한 손님을 맞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 왕비(맨 앞줄), 장남 나루히토 왕세자와 마사코 왕세자비(둘째줄), 차남 후미히토 왕자(나루히토 왼쪽 뒤)가 보인다. AP뉴시스
아키히토 일왕이 8일 퇴위 의사를 밝히면서 일본사회의 사회적 담론이 온통 ‘왕위 이양’의 블랙홀로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다. 특히 그의 발언은 ‘상징적 존재’로서의 일왕의 존재를 거론함으로써 현행 헌법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 측면도 있다. 때문에 평화주의자로서 신조를 관철시키는 동시에 평화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하려던 아베 신조 총리를 견제하기 위한 ‘다목적 카드’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아키히토의 발표는 지난달 집권 연립여당의 참의원 선거 압승 이후 아베의 숙원인 개헌 문제에 쏠려 있던 시선을 한꺼번에 되돌린 효과가 있다. 일본 언론은 하루 종일 아키히토의 발표를 주요 뉴스로 다뤘고, 국민들도 충격 속에 왕의 거취에 주목했다. 선거 승리에 이어 개헌을 염두에 둔 개각까지 마무리한 아베로서는 허를 찔린 양상이다.

특히 왕위 위양을 위해 향후 2∼3년간 치열한 찬반 논쟁을 거쳐 왕실전범을 개정하려면 아키히토의 발표와 논란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1947년 수립된 일본헌법 2조에 따르면 왕위는 국회에서 의결된 왕실전범 규정에 따라 계승된다. 왕실전범 4조는 ‘일왕이 승하했을 때 왕세자가 곧바로 즉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키히토의 퇴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려면 왕실전범을 개정하거나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현행 평화헌법의 역사적 의의가 재조명되면서 아베의 개헌 시도에 국민적 반대 여론이 확산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왕위 이양이 아닌 개헌의 정당성이 주된 담론으로 부상할 수 있다.

아키히토가 왕위 이양 의사를 밝히면서 ‘퇴위’라는 말을 쓰지 않는 점도 주목된다. 정치적 행위가 금지된 일왕의 개인적 의사로 왕실전범을 개정하는 것 역시 위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행 헌법을 존중하고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함의가 녹아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로 유지한 일왕의 ‘종신 통치구조'를 바꾸는 것도 일본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아사히신문은 아키히토가 퇴위 의사를 밝힌 지난달 중순 이후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일왕제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런 ‘바꾸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자칫 생전 이양이나 평화헌법 개정 모두를 좌절시킬 수 있다.

아키히토의 연설 직후 아베는 “왕 업무의 기본 방향은 연령이나 부담을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왕실전범 개정 같은 민감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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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