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은 내전과 정정 불안, 난민의 나라로 이미지가 박혀 있다. 소련과 미국의 침공 등 잇단 외세의 개입, 이슬람 원리주의 탈레반 정권의 무자비한 통치, 2001년 탈레반 정권 붕괴 뒤에도 새 정부와 탈레반 반군 사이에 계속되는 내전, 잊을만하면 터지는 폭탄 테러….
그런 아프간이 고대에는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문명의 십자로’ 역할을 하며 화려한 문화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아프가니스탄의 황금 문화’ 특별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기하학 무늬의 ‘황금잔’이 발길을 붙잡는다. 기원전 2000년 경 청동기시대 유적지 테페 플롤에서 출토된 것이다. 한반도에선 단군신화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 문명의 영향을 받은 거대한 문명을 형성했던 것이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군주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이후 세워진 아이 하눔 유적에서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코린트식 기둥, 사원의 벽에 붙은 장식판, 현지인을 닮은 헤라클래스 조각상 뿐 아니라 해시계까지 나왔다. 시간과 달을 동시에 표시할 수 있는 이 해시계는 놀랍게도 기원전 2세기에 제작됐다.
가장 관람객이 북적이는 코너는 ‘황금의 언덕’이라는 뜻의 틸리야 테페 유적에서 나온 발굴품이다. 1978년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의 발굴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유적은 이집트의 투탕카멘에 버금가는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기원전 1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총 6기의 무덤에서는 금관을 비롯해 허리띠, 귀고리, 팔찌 등 지금 봐도 정교한 무늬의 금 장식품이 발견됐다.
1세기 경 쿠샨 왕조의 여름 수도인 베그람 궁전 터의 ‘호기심의 방’에서 나온 유물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당시 왕족과 상류층은 활발한 교역의 결과로 인도산 상아제품, 지중해에서 온 유리잔과 유리병, 그리스 영향을 받은 청동기 등 최고급 수입 제품을 쓰며 화려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
코끼리 형상을 조각한 상아로 만든 가구 다리, 해초 무늬를 장식한 유리잔 등을 썼다. 고르곤(메두사)·물고기가 조각된 둥근 청동판은 판 아래에 물고기마다 추를 매달아 흔들면 물고기가 움직여 ‘청동 수족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고대 아프간의 찬란한 문화를 보여주는 이 전시품은 알고 보면 ‘문화재 난민’ 신세다.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소장품인 유물 231건은 2006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서 첫 해외나들이 전시를 한 이래 10년째 나라 밖을 떠돌고 있다. 정정 불안으로 제 나라에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런던의 영국 박물관 등 지금까지 11개국 18개 기관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한국은 12번째 국가다. 전시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9월 4일까지, 경주박물관에서 9월 27일∼11월 27일까지 이어진다.
난민 처지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바통을 잇기로 약속돼 있지 않으면 ‘무기한 수장’할 수 없어 전시를 가져올 수도 없다. 한국 다음에는 미국의 한 박물관에서의 전시가 예정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양수 연구관은 “각국에서 전시를 할 때 긴급 보존이 필요한 유물에 대해 보존처리를 해주고 있다”면서 “인류의 유산을 전 세계 박물관이 함께 지켜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문화재 난민’ 아프간의 황금유물, 한국에 들르다
입력 2016-08-09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