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땅에 분 소설 열풍 속으로

입력 2016-08-09 20:16

200여년 전 조선 땅에는 소설 바람이 거셌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에는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상품의 거래가 활발해졌다. 한양을 비롯해 상업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생겨난 ‘도시문화’의 하나가 소설 읽기였다. 돈을 받고 소설을 빌려주는 세책점(貰冊店)이 유행했고, 목판을 이용해 대량으로 소설을 찍어내는 방각본(坊刻本·사진) 출판이 활발했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이나 영화 ‘음란서생’(2006)에도 세책점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시기는 책의 인쇄와 보급이 관에서 민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9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전시실에서 시작된 ‘조선의 독서열풍과 만나다: 세책과 방각본’ 전시는 상업출판의 시초로 평가되는 방각본 소설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소설 열풍을 조명한다. 당시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였던 ‘춘향전’을 비롯해 ‘구운몽’, ‘월왕전’, ‘남졍팔난긔’, ‘아정유고’ 등 59종이 전시된다. 또 책대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세책점을 세책점이 자리하고 있었던 한양의 저잣거리와 함께 재현했다.

전시된 세책본 속에는 책을 빌려보았던 대여자들이 남긴 다양한 형태의 낙서도 볼 수 있다. 세책의 내용, 제품의 완성도, 글씨에 대한 불만이 적혀 있는가 하면 성(性)에 대한 낙서, 세책점 주인에 대한 욕설, 시대에 대한 한탄, 당시 유행가와 잡가 등이 기록돼 있다.

소설 읽어주는 걸 직업으로 삼은 전기수(傳奇?) 얘기도 흥미롭다. 전기수는 한창 이야기를 해가다 정점에 이르는 지점에서 멈춘 뒤 돈을 받고나서야 다시 읽어나가기도 했다. 새로운 인쇄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국수 한 그릇 정도의 싼값으로 살 수 있다고 해서 ‘육전소설’이라고 불리던 딱지본도 만날 수 있다.

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은 “출판계가 어려운데 방각본을 돌아보면서 오늘날의 독서와 출판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시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는 ‘상업출판이 움트다’ ‘소설의 열풍 속으로’ ‘세책거리를 거닐다’ ‘소설 대중화의 주역, 방각본’ ‘딱지본의 등장, 세책점을 기억하다’ 등 총 5부로 구성됐다. 11월 30일까지.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