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모규엽 기자의 굿모닝 리우!] 사진기자에게 딱 걸린 카메라 도둑

입력 2016-08-09 00:02
브라질 무장 경찰이 지난 6일(현지시간)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경기가 열린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강도를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이 강도는 이틀 전 이파네마 해변에서 외신 기자의 카메라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모규엽 기자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양궁 단체전 취재를 위해 리우 삼보드로무 경기장에 갔었습니다.

한창 경기가 펼쳐지던 오후 4시쯤 한국시간으로는 새벽이라 쏟아지는 잠도 쫓을 겸 1층으로 내려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검색대 근처에서 난데없이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을 연행해가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에 우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저 도둑을 잡았다는 것 정도밖에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문이 다음날인 오늘 풀렸습니다. 다시 여자양궁 단체전을 취재하러 또다시 삼보드로무 경기장에 나왔습니다. 한 외신 기자에게 “혹시 어제 도둑 잡힌 것 아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 기자 왈 “그 도둑 꽤 유명하다. 여러 신문에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외신을 뒤졌습니다. 구글에 ‘리오 시프 아처리(rio thief archery)’를 검색해봤습니다. 알고 봤더니 이틀 전 이파네마 해변의 한 카페에서 무려 4만 달러(4500만원)나 되는 호주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훔친 3인조 도둑 중 두 명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당시 한 여성이 그 호주 기자에게 말을 걸어 시선을 빼앗았고, 이 틈에 남자 두 명이 잽싸게 카메라와 가방을 낚아채 사라졌습니다. 호주 사진기자는 뒤늦게 자신의 카메라와 가방이 사라진 걸 알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찾기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합니다.

그 도둑들이 양궁 경기장에 다시 나타난 겁니다. 이들은 대담하게 더 많은 카메라와 노트북을 털기 위해 양궁 경기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고유 번호가 달린 갈색 조끼를 입습니다. 이들은 훔친 가방에서 발견한 사진기자의 조끼를 입고 무사히 양궁 경기장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둑들도 운이 억세게 없었습니다. 공교롭게 고가의 카메라를 잃어버린 호주 사진기자가 취재차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 사진기자는 조끼에 붙어 있는 식별번호를 무심코 봤는데 그게 자신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현장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설명해 도둑 두 명을 잡은 겁니다. 여성 한 명은 도망갔다네요. 저는 운 좋게 한국 기자 중엔 유일하게 ‘사연 많은’ 도둑을 잡는 현장에 있었던 겁니다.

사실 리우에선 도난 사건이 잦습니다. 브라질 전역의 도둑과 소매치기가 올림픽 특수를 놓치지 않으려고 모두 리우로 왔다는 겁니다. 실제 지난달 29일에는 호주 대표팀 단원들이 선수촌 화재 때문에 잠시 대피한 사이 방에 있던 소지품을 모두 도난당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직접 도둑을 잡는 현장을 목격한 뒤 좀더 소지품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때문에 메인프레스센터(MPC)나 경기장에서 혼자 있을 때, 잠시 화장실에 갈 때에도 가방을 들고 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도둑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항상 정신을 차려야겠지요.



리우데자네이루=글·사진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