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진 트웬지 심리학 교수 연구팀이 지난주 발표한 논문이 흥미롭다.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생)와 X세대(1965∼76년생) 2만6707명을 대상으로 사회성을 조사했더니 밀레니얼 세대의 성관계 횟수가 베이비부머 세대(1946∼65년생)나 X세대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다른 사람과 직접 교류하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란 게 연구팀 분석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데이트 상대를 찾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장으로 직접 만나지 않고 섹스 상대를 찾기도 한다. 개인적 안전에 대한 관심이나 미디어에 범람하는 성범죄 보도도 섹스를 적게 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교류하고 섹스도 적게 할 정도로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요즘 젊은 세대들이 기성문화에 저항하는 방법은 신선하다. 지난주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화여대 사태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학생들은 지난달 28일 학교 측의 발표 이후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이어 온라인 게시판 토론을 거쳐 반대시위를 하고 본관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학생들이 똘똘 뭉쳐 농성장에 자리를 틀었다. 이들은 외부 세력 개입으로 시위가 변질될까봐 농성장 입구에서 학생증을 통해 신분을 확인한 뒤 농성장으로 들여보냈다. 주동자나 수뇌부도 없었다. 이른바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시위였다.
경찰에 맞서 수십명이 넘는 학생들이 겹겹이 인간띠를 한 채 부르는 떼창은 ‘아침이슬’ 같은 민중가요가 아닌 걸그룹 노래였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폭력이 아닌 독서 시위를 하고, 졸업생들이 취업 상담을 해주는 등 색다른 시위 모습도 보였다. 결국 학교 측은 학생들의 농성 1주일 만에 사업 철회를 결정했다. 이번 사태를 놓고 ‘나 이대 나온 여자야!’에 깔려 있는 프라이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순혈주의’니 ‘학벌장사’니 논란이 일었지만 이들의 시위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모바일전문매체인 티타임즈는 이대생들의 이러한 시위 방식에 대해 ‘달팽이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다. SNS를 통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철저하게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면서 달팽이처럼 지독히 느리지만 민주주의의 성공적 경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의 ‘묻지마 살인’ 이후 대중이 분노한 방식도 비슷했다. 개인적 관계가 아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안전하지 않은 현실’에 사람들은 분노했고, 강남역을 찾아 피해 여성을 추모하면서 ‘포스트잇’으로 저항을 표현했다.
2013년 겨울 대학가를 강타한 ‘안녕들 하십니까’란 고려대생의 대자보 역시 페이스북과 각 대학 대자보 등 온·오프라인으로 퍼져나가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이 개설한 페북 페이지는 1주일 만에 이례적으로 26만명의 ‘좋아요’가 모였다. 2011년 전 세계로 퍼져나간 ‘월가 점령 시위’의 시작도 트위터였다. 화염병에서 촛불로 이어지는 과거 시위문화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평소에는 모래알처럼 개인주의적이고 정치 문제나 사회 현상에 무관심하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거나 위협을 느끼면 자발적으로 모이고 분노를 분출하면서 사회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지독히 더디지만. 어쩌면 이것이 하버마스가 주창한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인지도 모른다.
이명희 디지털뉴스센터장 mheel@kmib.co.kr
[돋을새김-이명희] 달팽이 민주주의
입력 2016-08-08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