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부실·분식회계에도… 대기업은 살린다?

입력 2016-08-08 00:05

대우조선해양이 7일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에서 정상등급(B등급)을 받은 것에 대해 대마불사(大馬不死)식 특혜의 연장선상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별도의 산업구조조정 트랙에서 자구계획을 진행 중인 점, 주채권은행이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점, 대주주의 정상화 의지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C·D등급으로 분류돼 당장 워크아웃 등에 돌입하게 된 기업과 비교해 분류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 신용위험평가는 주채권은행이 기업의 신용위험성 등을 평가해 결정한다. 사전에 금감원과 조율도 거친다. B등급을 줬다는 것은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하다고 주채권은행이 판단했다는 의미다. 대우조선은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이면서 대주주이기도 하다. 이미 4조2000억원을 대우조선에 부실 지원한 의혹을 받는 산은이 사실상 대우조선을 B등급으로 결정한 셈이다. 홍익대 경제학부 전성인 교수는 “대주주 입장에서 신용평가를 한다는 것부터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분식회계 의혹 등이 새로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산은 등 국책은행은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계속 ‘정상등급’으로 유지하고 있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대우조선에 대한 신용공여액은 19조원으로 전체 은행권 신용공여액(22조8000억원)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금융 당국은 대우조선이 C등급을 받게 될 경우 해외수주 등이 무효화할 수 있어 충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복섭 신용감독국장은 “수주가 개선돼 기업이 살아나는 게 바람직하지, 굳이 C등급으로 해서 RG(선수금환급보증) 콜 등의 문제를 유발하는 게 바람직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기업의 신용위험을 제대로 알리는 게 목적인 신용위험 평가에 정책적 판단이 개입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교수는 “체온계는 정치하게 만들어놔야 하는데 정부 관료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온도계가 엉망이 되고 있는 꼴”이라며 “국민 돈으로 살릴 수 있으니까 부실기업이지만 괜찮다는 식의 논리”라고 지적했다.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조 교수는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은 규모가 10분의 1 정도였다면 C·D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조선 빅3 자구계획 승인의 전제가 된 조선산업의 전망도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신용위험 평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STX조선해양은 지난해 수조원을 지원받았지만 결국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돌입 이후에야 대기업 신용위험 평가 결과에서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포함됐다. 선제적으로 부실징후 기업을 걸러낸다는 기존 취지가 무색하다는 평가다.

금융 당국과 주채권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신용위험 평가 과정에서 판단의 근거들을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된 대우조선 자금 지원 등 기본적으로 관련 정보가 불투명해 불신이 생기고 있다”며 “C·D등급 기업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평가에서 전체 구조조정 대상 32곳 중 상장사는 7곳이다.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받고 있는 전자업종의 부진이 지속된 것도 눈에 띈다. 전자업종은 전년 평가에서 7개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에 선정됐다. 올해는 5개다. 주로 삼성전자 등 글로벌 전자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1·2차 대형 협력업체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부품 제조 전자업종이 상당히 좋지 않다. 산업 리스크를 고려해 밀착 모니터링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종은 지난해보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절반 정도 축소됐다.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했고, 지난해 건설업종의 수주가 전년 대비 48% 증가하는 등 실적 개선세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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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