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뮤지컬계에서 ‘남남(男男) 케미’가 주류를 이룬지 오래다. 여성 관객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두 남자 배우의 조합이 흥행을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학로에서 고전적인 로맨스를 그린 남녀 2인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사진)가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키다리 아저씨’는 미국 작가 진 웹스터(1876∼1916)의 동명 서간체 소설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고아원 출신의 소녀 제루샤 에보트가 익명의 후원자 덕분에 대학에 진학한 뒤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한편, 친구의 삼촌인 제르비스 펜들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익명의 후원자가 바로 제르비스라는 것을 관객은 처음부터 알지만 제루샤만 맨 나중에 깨닫는다. 국내 공연에는 제르비스에 신성록, 송원근, 강동호 그리고 제루샤에 이지숙, 유리아가 캐스팅됐다.
2009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뮤지컬 ‘레미제라블’ 등으로 영국과 미국 공연계에서 권위있는 상인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을 각각 2차례 수상한 스타 연출가 존 케어드가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뮤지컬이지만 원작소설처럼 제루샤가 편지를 쓰고 제르비스가 편지를 읽는 독특한 형식이다. 무대에 계속 나와 있는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났을 때만 눈을 맞추고, 대부분의 시간은 각각 객석을 향해 대사를 던지거나 노래를 한다.
케어드는 두 인물의 매력을 한껏 부각시킴으로써 단순한 줄거리의 약점을 메웠다. 혈기왕성한 페미니스트와 따뜻하고 순수한 신사로 그려진 제루샤와 제르비스의 캐릭터는 사랑스럽다. 그리고 뮤지컬 ‘제인 에어’에서 케어드와 호흡을 맞췄던 작곡가 폴 고든이 클래식하고 서정적인 곡들로 극의 따뜻한 분위기를 살려낸다.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에서 호평을 받은 뒤 한국에 선보인 이 작품은 볼거리가 많고 주인공이 가창력을 뽐내는 것을 선호하는 국내 팬들에겐 참 소박한 편이다. 하지만 담백함과 따뜻함을 앞세워 티켓파워를 가진 스타 배우 없이도 뮤지컬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10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키다리 아저씨’ 참 소박한데 매력있네…
입력 2016-08-08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