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 ‘태풍’… 美, 국산 열연강판에 61% 관세폭탄

입력 2016-08-07 17:40 수정 2016-08-07 21:40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세계 철강산업에 보호무역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미국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보호무역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생산량의 절반을 수출해 온 국내 철강업체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 적잖은 타격이 우려된다.

미국 상무부는 5일(현지시간) 한국산 열연강판에 최고 61%의 반덤핑·상계 관세율을 부과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포스코엔 반덤핑 관세율 3.89%, 상계 관세율 57.04%로 총 60.93%의 관세율이 매겨졌다. 다만 미 상무부가 중복 항목을 조정하며 반덤핑 관세가 0%로 하향 조정돼 실제로는 상계 관세만 부과받게 됐다.

현대제철의 경우 반덤핑 9.49%, 상계 관세율 3.89%로 총 13.38%의 관세율이 결정됐다. 반덤핑 관세(AD)는 제품을 적정 가격 아래로 판매했을 경우, 상계 관세(CVD)는 정부 보조금 때문에 불공평한 경쟁을 했다고 판정될 때 매겨진다. 오는 9∼10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정이 남아 있지만 ITC는 덤핑 등에 따른 피해 여부만을 판단하기 때문에 미 상무부의 결정이 번복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우선 제조 및 수출 과정에서 불법 보조금 지급을 문제 삼고 있다. 열연 제조 과정에서 적정 가격 이하로 전력 등을 공급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의 단기수출금융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수출금융보험 지원 등 총 41개의 지원 프로그램을 불법보조금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 철강업계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산 열연에 최소 86.9%에서 최대 158.9%의 덤핑 마진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자동차 및 가전 등 산업 전반의 기초재료인 열연강판은 그동안 무관세였다. 60%가 넘는 관세가 적용되면 가격 경쟁력 자체가 상실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우리 철강업계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 418만t이다. 전체 수출량의 13%에 달한다. 미국의 이번 결정으로 향후 최대 수출 지역인 동남아시아 시장(수출 비중 22%·750만t)에도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잇따른 관세 폭탄은 브렉시트에 따른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또한 중국발 과잉공급 영향에 따른 미·중 간 마찰 양상에서 한국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산 철강재는 미국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도 무역 제재로 판로가 줄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23일 향후 5년 동안 한국산 방향성 전기강판(GOES)에 최고 37.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전기강판이 향후 전기차 핵심 소재로 부상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국 시장 보호에 나선 셈이다.

우리 철강업계는 미국 법원이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통할 가능성이 낮다는 해석이 나온다. 따라서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철강업계는 제품경쟁력 향상과 해외 공장을 활용한 우회 수출까지 다양한 방법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