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다음 달 국립묘지에 안치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이 거세다.
7일 필리핀 일간지 필리핀스타는 마르코스 가족과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주 대통령 관저에서 만나 마르코스의 시신을 다음 달 18일 국립묘지에 안치키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가족들은 마르코스의 생일인 11일보다 1주일 뒤인 18일로 매장 날짜를 정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지난 5월 23일 마르코스의 국립묘지 안치를 승인했다. 그는 당시 “마르코스의 국립묘지 매장 문제로 필리핀은 오랫동안 분열됐다”며 “필리핀에 남아 있는 증오를 지우고 국가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라고 밝혔다.
당선 전부터 두테르테는 마르코스를 옹호하는 발언을 계속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운동 중에도 “마르코스는 필리핀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라고 했다. 마르코스를 비판하는 여론은 아내 이멜다의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두테르테는 “마르코스의 업적이 많은데 비판이 거센 것은 모두 아내 때문”이라고 했다. 이멜다는 구두 1000켤레를 모은 것으로 유명하다.
국립묘지 안치 날짜까지 결정됐지만 여전히 많은 필리핀 국민은 독재자를 국가 영웅과 나란히 매장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마르코스 독재에 저항하다 1983년 암살된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의 가족 반대가 심하다. 이들은 필리핀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 아키노 상원의원의 부인 코라손 여사는 대통령을 역임했고 아들 베니그노 아키노 3세 역시 15대 대통령을 지냈다.
20여년간 독재자로 군림한 마르코스는 1986년 민주화운동으로 실권한 뒤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추방됐다. 89년 하와이에서 사망한 후 그의 시신은 93년 돌아와 고향인 마닐라에 방부처리돼 보관 중이다. 마르코스의 유족은 그동안 유해를 국립묘지 영웅묘역에 묻어달라고 요구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독재자 마르코스 국립묘지 묻히나… 두테르테 “안치” 발표
입력 2016-08-07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