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차원인가, 몸통은 따로있나

입력 2016-08-07 18:21 수정 2016-08-07 21:10

“대우조선해양은 밑 빠진 독이 아니라 방수처리가 잘 된 독이다. 결과를 통해 말하겠다.”

정성립(66) 대우조선 사장은 지난 3월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는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수조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됐지만 적자 규모가 줄어들기는커녕 투자자들 앞에 내놓은 재무제표에 거액의 손실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충격만 주던 상황이었다. 국민의 싸늘한 시선을 돌리고자 마련된 기자간담회 4개월여 전,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는 4조2000억원의 공적자금 추가 투입이 결정됐다.

대우조선의 메소드 연기

정 사장의 이날 공언은 부정적 의미에서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대우조선이 지난해 회계자료를 꾸며 영업손실 1200억원가량을 고의로 축소 조작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방수처리’ 운운하며 부실을 과거의 일로 치부했던 올 초가 범행 시기였다. “회사가 정상화되면 국민의 돈을 갚을 수 있다”고 말했던 산업은행 출신 김열중(58) 부사장은 연이틀 검찰에 소환돼 7일 새벽에야 귀가했다.

정 사장은 지난달만 해도 남상태(66·구속기소) 고재호(61·구속기소) 전 사장과의 완벽한 단절을 선언했지만 이제 같은 처지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다. 정부의 수조원 지원 결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발생한 거액 회계 사기에 사장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없다.

그가 지난달 밝힌 ‘비리행위의 일벌백계’ ‘선제적 자정노력 강화’ 등의 쇄신 플랜은 스스로를 겨냥한 말이 됐다.

무능인가 공범인가

현 경영진의 회계 사기가 추가로 드러나면서 대우조선을 관리감독하던 금융 당국과 산은은 새로운 책임론에 직면하게 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산은의 거액 손실 보고에 따라 대우조선 문제를 알게 됐다”고 국회에서 밝혔지만, 전부가 아니었다. 3개월간의 회계법인 실사를 거쳐 경영정상화 방안을 도출했지만 현 경영진은 정상화는커녕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대우조선의 회계부정을 오래 감리했던 금융감독원도 검찰에 뒤처지며 한계만 절감하게 됐다. 금감원은 이미 국회로부터 “2014년 5월 이후 2년간 산은을 전혀 검사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진웅섭 금감원장은 “분식 혐의를 가진 사안까지 깊이 들어가서 파악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자인했다. 2013∼2014년 대우조선 손실 은폐를 잡아내지 못한 안진회계법인은 또다시 사기에 속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하게 됐다.

국민 기만, 몸통 따로 있나

대우조선의 현 경영진이 작정하고 국민 모두를 속인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란 추측도 고개를 든다. 서별관회의가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키로 결의한 수개월 뒤에 자본잠식률 50%를 상회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혈세 낭비 비난 여론을 피하려는 범죄가 과연 대우조선 차원이었는지, 현 정부까지 개입한 것인지는 결국 검찰 수사로 드러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2015년 10월의 서별관회의와 2016년 초의 회계 사기는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현 사장을 조사해봐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대우조선 수사 초기 “분칠을 한다는 분식회계라고 부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며 “회계 사기라는 용어를 정립해야 한다”고 범죄의 엄중함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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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