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부터 ‘무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 단위 양궁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거머쥔 뒤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07년 36회 전국체전에서 3관왕에 올랐고, 2년 뒤 전국체전 한국 타이기록을 써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양궁 2관왕을 정조준하고 있는 세계랭킹 1위 김우진(24·청주시청) 얘기다.
김우진은 충북체고 3학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 양궁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18세 소년 궁사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국가대표가 되자마자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개인·단체전을 석권하며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지는 법을 몰랐다.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2관왕에 올랐다. 2012 런던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당연히 국가대표에 뽑힐 것으로 예상됐다. 그랬던 그가 런던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4위에 그쳤다. ‘대표팀 탈락’. 처음으로 패배의 쓴잔을 들이킨 순간이었다.
김우진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전국체전에서 60명 중 55위를 할 정도로 한동안 큰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대표팀 탈락은 정신없이 달려왔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활을 쏘기 시작했다. 최정상에서도 절대 안주하지 않는 연습벌레가 됐다.
슬럼프를 벗어난 건 2014년 전국체전이었다. 그는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지난해 7월 코펜하겐 세계선수권대회 2관왕에 이어 9월 리우 프레올림픽 개인전까지 정상에 올라 다시 무적 신화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6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모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양궁 남자단체전 결승. 김우진은 구본찬(23·현대제철) 이승윤(21·코오롱)과 함께 미국을 세트스코어 6-0(60-57 58-57 59-56)으로 꺾고 꿈에 그리던 올림픽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남자양궁은 8년 만에 단체전 금메달을 되찾았다. 김우진이 지난 4년간 흘린 땀방울들은 올림픽 첫 출전을 통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이번에도 거침이 없었다. 남자 대표팀은 김우진을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기량을 선보였다. 8강전에서 네덜란드, 4강전에서 호주를 차례로 물리치고 미국을 만났다. 한국은 김우진이 가장 먼저 활시위를 당겼다. 맏형 김우진이 과녁에 10점을 맞추자 구본찬과 이승윤도 차례로 10점에 정조준했다. 한국은 1세트부터 6연속 10점을 기록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1, 2세트를 따낸 한국은 3세트 마지막 3발을 ‘10-10-10’으로 장식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김우진의 생애 첫 올림픽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목표는 개인전 금메달이다. 그는 개인전 랭킹라운드에서 72발 합계 700점으로 이미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개인전 금메달까지 차지하면 올림픽 남자양궁 사상 두 번째 2관왕이 된다. 지금까진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저스틴 휴이시(미국)가 유일하다.
김우진의 개인전 우승에 있어 가장 큰 적수는 세계랭킹 6위 브래디 엘리슨(28·미국)이다. 앨리슨은 랭킹라운드에서 690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김우진은 올림픽 이전 치러진 국제대회에서 엘리슨과 만나 여태껏 진 적이 없다. 리우올림픽에서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김우진이기에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리우스타-男 양궁 세계랭킹 1위 김우진] 4년 전 대표 탈락이 ‘보약’… 神弓으로 부활
입력 2016-08-08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