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학교를 마치고 씩씩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온 중학생 딸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유도부에 가입할래요.”
아버지는 복장이 터졌다. 운동을 진로로 택하면 얼마나 험난하고 고생스럽게 살지 선하게 그려졌다. 그것도 하필 격투기인 유도였다. 아버지는 딸이 그저 평범한 삶을 살기 원했다. 딸의 운동을 뒷바라지할 만큼 집안형편도 넉넉지 못했다. 아버지는 PVC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근로자였다.
단호하게 반대했지만, 딸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살면서 한 번도 애를 먹이지 않던 딸이 다부진 표정으로 ‘하고 싶다’는데 도저히 말릴 방법은 없었다. 결국 승낙했다. 기뻐서 방방 뛰는 딸을 보니 걱정과 근심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여자유도 국가대표 정보경(25·안산시청)의 아버지 정철재(55)씨가 13년 전 딸의 부탁을 끝까지 거절했으면 한국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은메달 1개를 놓쳤을지 모른다. 정보경은 6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리카 아레나에서 여자유도 48㎏급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보경은 원래 ‘태권소녀’였다. 4세였던 1994년부터 택견을 배웠고, 양산 천성초등학교로 진학한 뒤에는 학원에서 태권도를 수련했다. 정씨는 딸이 그저 건강과 호신을 위해 태권도를 배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보경은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악바리였다. 웅상여중 1학년 때 태권도 3단까지 진급했다. 그때 유도부를 신설한 웅상여중 체육교사는 힘이 세고 집념이 강한 정보경을 눈여겨보고 가입을 권유했다. 정보경의 인생은 그때부터 180도 바뀌었다.
아버지의 걱정대로 유도선수의 삶은 쉽지 않았다. 정보경은 경남체고 2학년 때 십자인대 파열로 무려 1년이나 재활에 전념했다. 경기대 3학년 때는 러시아의 한 대회에서 양쪽 무릎인대가 끊어져 6개월 동안 시달렸다. 정씨는 이런 딸을 20년 동안 뒷바라지하기 위해 휴일까지 반납하고 몸을 던져 일했다.
부상 속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지금 세계랭킹 8위 수준인 정보경에게 올림픽 메달을 기대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한국유도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다관왕을 자신했지만 어디까지나 체급별 랭킹 1위를 3명이나 보유한 남자대표팀에 해당하는 얘기였다. 여자대표팀에서 주목을 받은 선수는 57㎏급 김잔디(25·양주시청)뿐이다.
하지만 리우올림픽 유도 첫날 정보경은 승승장구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8강에서는 이 체급 세계 1위 우란셋세그 뭉크하밧(26·몽골)에게 절반을 빼앗는 과정에서 반칙을 당해 한판승을 거두는 이변까지 연출했다. 파울라 파레토(30·아르헨티나)에게 절반패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결승까지 진출한 것만으로도 쾌거였다.
정보경은 한국의 리우올림픽 1호 메달리스트이자 한국 여자유도가 1996 애틀랜타올림픽(조민선 66㎏급 금메달) 이후 20년 만에 배출한 결승 진출자다.
정씨 부부는 경남 양산 평산동 마을회관에서 이웃들과 함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응원했다. 정씨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만 하라고 부탁했다. 멋지게 경기를 펼친 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20여년 뒷바라지… 공장 근로자 아버지는 쉼 없이 일했다
입력 2016-08-08 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