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진짜’만이 통하는 사춘기

입력 2016-08-08 20:26

“우리 부모님은 진짜 가식적이에요. 말과 행동이 달라요.”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무엇이 진짜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전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들의 이면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던 부모나 주변 어른들의 말이 실제 행동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들은 잔인하리만큼 정직하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갈 일들도 아이들의 ‘진짜’를 찾는 렌즈엔 그대로 드러난다. 아이들은 이것을 두고 가감 없이 표현한다. 아이들의 표현이 편협하고 어리석다고 치부하고 싶지만 실상 그 속에 있는 ‘핵심’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춘기 부모들은 아이의 말에 종종 폐부를 찔리는 느낌을 갖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모가 있다. 그러면서 정작 눈에 보이는 결과와 성적에 따라 아이에 대한 부모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행동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됐고, 이후 부모의 말을 가식으로 여기며 부모의 말에 자동적으로 귀를 닫아버렸다.

한 부모는 “인생에는 때가 있고 지금 네가 맡은 일은 공부니 기왕 할 거면 열심히 즐겁게 하라”고 자녀에게 늘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정작 자신의 주부생활을 불평하고, 아빠는 ‘언제 회사를 그만둘까’하는 고민을 수년 째 하고 있다. 아이는 “부모님이나 기왕 살 거면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늘 신앙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 부모가 주일예배 대신 입시특강을 들으라고 자녀에게 말할 때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의 진짜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했다. 진짜 중요한 건 신앙보다 자신의 실력이라는 부모의 믿음을 습득하게 된 것이다.

사춘기 자녀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 합리적인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들은 귀가 아니라 눈으로 배우고 피부로 와 닿는 경험만을 진짜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강박적으로 진짜를 찾는 아이들에게 다가갈 통로는 어른들의 진짜 모습뿐이다. 말이나 생각이 아닌 실제 행동과 삶, 그리고 교훈이나 훈계가 아닌 진정성 있는 대화만이 사춘기 아이들을 만나게 한다.

그런 면에서 사춘기 자녀들의 모습은 부모들이 진정한 배움을 깨닫도록 이끄는 스승이다. 어쩌면 스스로도 속이고 있던 우리의 진짜 모습을 자녀들을 통해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사춘기 부모의 최선이다.

한영주<한국상담대학원대 15세상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