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베토벤 아버지

입력 2016-08-07 18:24

몇 주 전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께서 거래처 사장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그래서 그 거래처 사장님에게서 자식이 넷이나 있고 며느리 사위 다 있는데 아버지 보청기 하나 왜 못해 드리느냐는 말을 들었다며. 실제로 보청기 가격은 비쌌지만 넷이 모으면 우리가 못 해드릴 가격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보청기를 거부하셨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는 다 듣는데 왜 그까짓 것이 필요하냐고. 아버지도 이비인후과를 다니시며 보청기 상담을 받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걸 끼우니 갑자기 귓속이 너무 시끄러워 참을 수가 없으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난청은 사실 무척 오래되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십대 시절에도 아버지는 누군가 아버지 뒤에서 하는 말은 못 들으셨다. 아버지가 하는 공장이 살림집과 붙어있어서 낮에는 늘 꽝꽝거리는 프레스 기계 소리가 우리 집에서 나왔다. 작업환경을 조사 나온 노동부 고지에 따르면 비행기 이륙 소음이라고 작업자에겐 귀마개가 권고사항이었다. 50년이 넘도록 귀마개를 하지 않고 그런 환경에서 있었으니 난청이 안 오는 게 이상한 일. 그나마 한쪽만 그래서 여태껏 아버지는 한쪽 청력으로 세상의 소리를 들어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사람 얼굴을 마주보며 주의 깊게 들으신다. 그리고 못 들은 이야기는 다시 말해 달라고 하신다. 아버지가 난청이 있다는 걸 모르는 상대방은 짜증이 날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면 다시 묻거나 확인하지 않고 그냥 사셨던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하며 자수성가하신, 독불장군 같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다. 그동안 뒤에서 아버지를 못마땅히 여기는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아버지 뒤에서 욕하는 것들은 다 무시하고 당신이 정확히 들은 내용, 앞에서 한 말만 들으며 살아오신 것이다. 그런 우리 아버지가 꼭 베토벤 같기도 하고, 이제 칠순이 넘은 연세가 되시니 새삼 귀엽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유형진(시인)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