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당을 지키지 못하면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에게 백지수표를 주게 된다.”
미국 공화당의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4일 오후(현지시간)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올해 11월 8일 동시에 치르는 대선과 의회선거 모두 민주당이 압승할지 모른다는 초조감을 드러냈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 다수당의 지위는 고수해야 한다며 지지와 후원을 호소했다.
라이언 의장은 이메일에서 “선거일까지 96일 남았다. 대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지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에게 백지수표를 주게 된다”며 “(백악관의 클린턴 대통령과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등장은) 이 나라에 진짜 파괴적”이라고 주장했다. 라이언 의장이 쓴 ‘백지수표’라는 표현은 대선과 의회선거를 모두 민주당에 내주는 걸 의미한다. 라이언 의장은 클린턴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의회 선거라도 지켜야 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면 펠로시 원내대표가 하원의장에 유력하다.
라이언 의장의 위기감은 민주당의 대선후보 클린턴과 공화당의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 격차가 15% 포인트까지 벌어지는 등 갈수록 대선 전망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증폭됐다.
매클라치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의 지지율은 48%, 트럼프의 지지율은 33%로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가 15% 포인트에 달했다. 전당대회 이후 가장 큰 차이다.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의 공동조사에서는 클린턴이 47%, 트럼프가 38%로 격차가 9% 포인트였다. 전날 보수적인 폭스뉴스의 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이 49%, 트럼프가 39%로 10% 포인트 차이였다.
대선 향배를 가르는 ‘스윙 스테이트’(선거 때마다 승패가 엇갈리는 주) 중에서도 클린턴이 우위를 보이는 곳이 늘고 있다.
스윙 스테이트 중 선거인단이 29명으로 가장 많은 플로리다에서는 클린턴이 48%로 트럼프(42%)를 6% 포인트 차이로 리드했다(서포크 대학). 펜실베이니아에서는 클린턴이 49%로 트럼프(38%)를 11% 포인트 차이로 앞섰다(프랭클린&마셜). 뉴햄프셔에서는 클린턴 51%, 트럼프 34%로 17% 포인트 차이가 났다(WBUR).
한편 라이언 의장은 자신의 지역구인 위스콘신의 라디오방송 WTAQ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의 가치가 훼손되면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해서 그에게 백지수표를 건넨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트럼프는 공화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경선에서 이겼다”며 “유권자들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트럼프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면서 공화당 내 이탈자들이 늘고 있다. 리처드 한나 하원의원이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데 이어 공화당 경선에서 낙마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의 선거 참모들도 클린턴을 돕기로 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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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폴 라이언 “힐러리에게 백지수표 줄 수는 없다”
입력 2016-08-0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