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제작사 도호는 한국에 진출했던 극단 시키와 함께 일본의 양대 뮤지컬 산맥이다. 도호의 대표 레퍼토리인 ‘미스 사이공’과 ‘레미제라블’에 각각 한국 배우가 주역으로 캐스팅됐다. 오는 10월 도쿄를 시작으로 내년 1월까지 6개 도시에서 공연되는 ‘미스 사이공’의 킴 역에는 지난해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첫 한국인 주역의 영예(국민일보 2015년 6월 1일자 단독보도)를 안았던 김수하(22)가 출연을 앞뒀고, 내년 5월 도쿄를 시작으로 10월까지 4개 도시 투어를 가지는 ‘레미제라블’ 일본 30주년 기념공연에는 지난해에도 주역 장발장을 연기했던 양준모(36)가 또다시 무대에 오른다.
두 사람은 한국 배우들이 꾸준히 활동해온 극단 시키 출신이 아니면서 도호 공연에 캐스팅 된 한국인 남녀 배우 1호다. 게다가 두 사람은 특별한 사제 관계이기도 하다. 아직 대학생인 김수하의 보이스코치를 맡아 프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조련한 주인공이 바로 양준모다. ‘미스 사이공’ 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을 앞둔 김수하와 현재 ‘스위니 토드’에 출연중인 양준모가 5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김수하는 “영국과 일본의 ‘미스 사이공’에 출연하게 된 것이 모두 (양준모) 선생님과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게다가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나만의 개성과 색깔이 있는 소리를 찾게 됐다. 주변에서 목소리가 바뀌었다고 말할 정도”라며 “오디션 때는 물론 영국에서 공연하는 동안에도 선생님이 틈틈이 화상통화로 레슨을 해주셨다. 또 내가 걱정된 선생님은 영국에서 따로 보이스코치까지 구해 주셨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양준모의 부인이자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의 작곡가 맹성연이 신작 데모 테이프를 녹음할 때 김수하가 친구의 추천으로 참가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맹성연은 남편에게 재능이 돋보였던 김수하의 조련을 부탁하는 것은 물론 지난해 2월 일본 ‘미스 사이공’ 킴 역으로 오디션을 보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마침 일본 ‘레미제라블’ 연습중이던 양준모의 추천으로 기회를 얻은 김수하는 단번에 도호 관계자들의 낙점을 받았다. 그런데 이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영국 크리에이티브팀 관계자들이 카메론 매킨토시 프로덕션에 그를 추천해 웨스트엔드 버전 오디션을 보도록 권유하면서 순서가 바뀌게 됐다.
양준모는 “수하는 워낙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누가 조금만 가르치면 잘 될 아이였다. 한 마디를 이야기하면 열 마디를 알아들었다”면서 “도호의 ‘레미제라블’에 캐스팅 되면서 큰 책임감을 느꼈다.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한국 배우들에 대한 이미지가 내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그 때문인지 내 다음으로 수하가 바로 캐스팅 되어서 정말 기쁘다. 수하가 영국에서 공연할 때는 내가 일본 공연 중이라 가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꼭 가서 볼 생각이다”고 밝혔다.
김수하는 “일본 오디션을 볼 때 도호 관계자들이 내게 ‘준모씨 제자구나’라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도호가 당시 한국에서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나를 선택하는 모험을 한 것은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사실 두 사람이 영국이나 일본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미스 사이공’과 ‘레미제라블’이 대사가 거의 없고 노래로 진행되는 송스루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발음이나 억양을 감출 수 없는 대사와 달리 노래는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공연 내내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양준모는 “지난해 도호 ‘레미제라블’ 출연을 위해 일본어를 배우는 한편 연습 전에 모든 노래를 암기하고 갔다. 6주간의 공식 연습 동안 발음 교정 등 세부적인 것까지 철저하게 준비했어도 갑자기 공연 중에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했다”면서 “당시 트리플 캐스팅이라 매일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쉬는 날에도 계속 머리 속으로는 공연을 반복하곤 했다. 다행히 공연 내내 ‘블랙아웃’ 된 적은 없었다”고 웃었다.
김수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수하는 “영국 공연 당시 킴의 언더스터디(주역배우가 무대에 서지 못할 때 투입되는 배우) 겸 앙상블로 뽑혔는데, 한달도 안돼 킴으로 출연하게 됐다. 한국에서 가사를 다 외우고 갔지만 너무 걱정이 돼서 런던 프로덕션이 막을 내릴 때까지 쉬는 날에는 악보를 붙잡고 살았다. 덕분에 킴으로 32회 출연하는 동안 실수는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해외 진출에 커다란 분기점을 마련한 두 사람이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김수하는 아직 한국보다는 해외 무대에서 좀더 활약하고 싶은 꿈을 피력했다. 김수하는 “동양 배우들이 많아 쉽지 않겠지만 브로드웨이의 ‘미스 사이공’에 도전하고 싶다. 또 일본에서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역도 해보고 싶다”고 피력했다.
이와 달리 양준모는 20대 중반에 이미 뮤지컬계 주역으로 발탁되면서 접었던 오페라에 대한 꿈을 드러냈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오페라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사실 가끔씩 오페라 캐스팅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도 1주일에 1번씩 성악 레슨을 따로 받고 있다”면서 “미국에서도 켈리 오하라 등 스타급 뮤지컬 배우들이 오페라에 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뮤지컬과 오페라의 접점을 찾는 이런 시도는 두 장르 모두에 도움이 된다. 내가 두 장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스승과 제자, 日 뮤지컬 무대 사로잡는다
입력 2016-08-07 18:41 수정 2016-08-07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