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세금전쟁

입력 2016-08-05 18:19

예산과 세제는 기획재정부 업무의 양대 축이다. 재정의 쓰임새를 확정짓는 예산편성과 세금의 틀을 짜는 세제개편을 마무리하면 기재부 한 해 농사는 끝이다. 예산이 정부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세제는 국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비중으로 따지면 예산분야가 훨씬 중요하겠지만 여론 탐색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신경을 더 쓰는 것은 세제 부문이다. 내가 세금을 얼마나 더 내는지, 덜 내는지가 가름되는 세제개편은 국정 지지도에 꽤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13년 ‘연말정산 파동’이라는 조세저항을 경험했던 정부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당위와 현실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지난달 말 2016년 세법개정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여론을 제대로 읽었다는 고민은 안 보인다. 각계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변호사, 언론인, 교수 등 전문가 60여명으로 구성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도 제 기능을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 내가 위원으로 참석해 본 결과 정부 안을 추인하는 기구에 불과하다는 걸 절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포문을 열었다. 지난 2일 부자 증세를 골자로 한 세법개정안을 들고 나와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언론은 ‘세금전쟁’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다음 달에는 국민의당이 세법개정안을 발표한다. 국민의당 개정안도 큰 틀에서는 더민주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전쟁은 정부·여당이 자초했다. 대통령의 ‘증세 불가’ 지침에 따라 얼개를 맞추다보니 제대로 된 내용이 들어갈 리 없다. 야당 공세에 수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투자와 소비 위축에 따른 경제 악영향’이란 논리를 되풀이하며 반박할 뿐이다.

지금으로선 야당의 개정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국회의장이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하면 본회의 에 상정되고 이어 과반수 야당이 힘을 모으면 국회 통과가 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세금정책은 전쟁처럼 일방의 승리로 획득돼서는 안 된다. 전쟁이 아닌 전쟁 같은 치열한 논쟁의 산물이어야 한다. 정부·여당과 야당이 머리를 맞대 수렴된 결과물을 내놓는 게 그나마 정답에 가깝다. 9월 정기국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정진영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