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청소년’ 7명이 스페인 산티아고길 도상에 있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부천시 위기청소년 공동체 ‘세상을품은아이들’ 숙소를 떠나 영성의 길로 향한 아이들. 7월 말까지 총 800㎞를 걷고 또 걸었다. ‘나를 발견하기’가 도상의 주제이다. 내가 보이면 하나님이 보인다. 도상의 바울도 그랬다.
이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명성진(부천 예수마을교회) 목사가 아이들과의 ‘사랑의 투쟁’을 보내왔다. 그는 4일 또 다른 공동체 아이들을 이끌고 몽골 사막으로 떠났다. 거친, 그러나 내면이 너무나 연약한 아이들과 11년째 예수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명 목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아쇼카펠로우상’을 받았다.
유난히 표독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만을 다 품은 눈빛을 하고 제 앞에 앉아 있던 아이는 언제든 뛰쳐나갈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탈출의 때를 노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게 한빈이와의 첫 대면이었고, 그날 이후 한빈이와 저는 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한빈이는 사고뭉치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사는 동네에서도 달갑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경찰서와 법원에서는 나름 ‘유명세’를 얻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어엿한 청년이 된 한빈이는 지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발에 물집이 생겨 고통스러운데도 매일 20∼30㎞를 걷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빈이의 변화를 보며 놀랍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맞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빈이는 범죄로부터는 떠났습니다. 음악을 하며 MG밴드의 보컬로, 소망을 잃은 아이들의 멘토로, 또 강연자로 사는 모습은 멋져 보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여전히 옛 모습과 싸우며 쓰러지길 반복합니다. 새롭게, 멋지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은 한빈이입니다. 한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 갈등 속에 한빈이는 산티아고로 떠났습니다.
이 길을 걸으면 하나님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 위에 있는 7명의 아이들. 아니, 3명의 청년과 4명의 아이들은 모두 한빈이와 다르지 않은 상태로 순례의 길에 올랐습니다. 이전의 삶에서는 분명 떠났지만 그 그림자로부터는 자유롭지 않은 채 힘겨워하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보내면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가시가 돋은 채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더 나빠져서 오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과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함께 걷는 것은 오랜 소망이었습니다. 함께 걸으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던 아이들이 넘어지고 쓰러져 힘겨워할 때, 지금이 바로 가야 할 때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설득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의 길에서 인생의 반전을 이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너희가 지금 힘겨워하는 그 벽을, 순례의 길을 걷는 동안 넘을 수 있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인생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여행이니만큼 여비의 일부분이라도 직접 마련해보자고 했습니다. 한 사람당 100만원을 모아보기로 했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몫을 해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여비를 준비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몽골 힐링캠프와 같은 시기였기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출발 날짜가 다가오자 점점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비용을 볼 때마다 너무 무리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런 채로 산티아고 순례의 길은 시작됐습니다. 아이들을 이끌기 위해 두 달간 혹독하게 체력운동을 한 아내와 ‘세품아’의 건강한 청년 김상현(31) 선생님이 7명의 아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들을 배웅하고 공항에서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최소한으로 예산을 잡았음에도 미처 다 마련하지 못한 여비를 저들에게 과연 보내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찾아들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하나님이 이 여행을 떠나게 하셨다면 하나님이 이 또한 책임지실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부여잡았습니다.
새벽녘에 산티아고에 가 있는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두려운 마음에 받아보니 그냥 제가 보고 싶어서 걸었다고 합니다. “경치가 참 아름답더라”고 하니 아이가 대답합니다. “저는 아직까지 경치를 못 봤어요. 땅만 보고 걷다 보니….” 힘들긴 힘든가 봅니다. 작년 자전거 국토종주 때 아이들 중 유일하게 충북 괴산 이화령고개를 멈추지 않고 넘었던 강철체력인 아이인데….
하나님 지으신 본래 모습 찾기
초반에 아직 걷는 게 몸에 익지 않은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걸어가야만 쉴 곳에 도착하기에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차츰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갑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한빈이에게서 문자가 와있습니다.
‘목사님, 보고싶어요ㅠㅠ.’
한빈이의 마음속 가시가 제거되었나 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마음이 잔잔해졌나 봅니다.
“강해서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하면서 강해졌다”는 한 청년 모험가의 말처럼 산티아고 순례의 길에 오른 아이들 또한 그렇게 강해지고 있겠지요. 그 길을 걸으며 수많은 순례자들이 길 위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하나님이 지으신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일어섰으면 좋겠습니다. 매일매일 힘겨운 싸움 속에서 자신을 이기고 승리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이기는 법을, 함께 손 맞잡고 이기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왜 그렇게 여행에 집착하느냐고요. 제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단절된, 또 다른 세상 속을 걸을 때 드러난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길 위에서 깨지고 부서지며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위기청소년 상담 문의 032-672-4620).
글=명성진 목사 (부천 예수마을교회)
한걸음 마음속 가시가 빠지고 한걸음 마음속 폭풍 멎습니다
입력 2016-08-05 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