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광란의 질주’ 뇌전증 아닌 뺑소니 참사

입력 2016-08-05 00:02
지난달 31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문화회관 사거리에서 ‘광란의 질주’로 7중 추돌사고를 낸 가해자 김모씨의 푸조 승용차(빨간 원)가 사거리 300m 지점에서 앞서가던 흰색 승용차를 들이받고 있다. 김씨는 이 사고 후 빠른 속도로 도주하다 7중 추돌을 일으켰다. 블랙박스 영상 캡처

부산 해운대에서 발생한 ‘광란의 질주’ 참사의 원인이 당초 추정과 달리 뇌전증(간질)이 아닌 뺑소니 과속운전이라는 경찰 조사가 나왔다. 가해차량 운전자가 ‘뇌전증’으로 정신을 잃은 게 아닌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7중 추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뺑소니를 내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뺑소니로 인한 우발적 사고에 수사력이 모아지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해운대경찰서는 사고현장 주변에 설치된 CCTV와 추가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뇌전증 환자인 가해 운전자 김모(53)씨가 사고 당시 의식이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김씨가 몰던 푸조 승용차가 사고 지점에서 100m 떨어진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2차로에서 3차로로, 다시 1차로로 이동해 고속으로 질주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푸조 승용차가 사고현장 직전 300m 떨어진 곳에서 앞서가던 흰색 승용차를 들이받는 추돌사고를 내고 도주하는 영상을 다른 차량의 블랙박스에서 추가 확보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2차로에서 추돌사고를 낸 김씨의 푸조 승용차는 1차로로 차선을 변경했다.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에 진입해 지나가던 시내버스를 간신히 피해 질주하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해운대경찰서 관계자는 “김씨가 일관되게 사고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나 1차 접촉사고 영상을 보면 전형적인 뺑소니 사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사고현장 CCTV 화면에서도 뇌전증으로 의식을 잃은 사람이 운전하는 차량으로 볼 수 없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앞차를 피해 진로 변경을 하고 다시 비어 있는 차로로 계속 진행한 것을 볼 때 김씨가 사고 당시 의식이 없었다거나 행동을 제어 못하는 그런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경찰은 사고 당일 뇌전증 약을 먹지 않았고 1차 접촉사고와 2차 중대사고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는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잠정 결론 내리고 김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김씨의 뇌전증 질병이 사고 원인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신경전문의, 도로교통공단 분석 의뢰를 바탕으로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평소 김씨의 담당의사에게 뇌전증에 대한 발작 증세나 의식을 잃었을 때 증상 등을 조사단계에서부터 심도 있게 들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던 김씨의 혈액채취 검사 결과 체내에는 미량의 뇌전증 약물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약물 양성판정이 나왔지만 사고 당일 뇌전증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는 김씨의 진술을 감안해 체내에 남아 있던 수치가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내용 등을 추가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뇌전증 등 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지난달 12일 운전면허 정기적성검사 신청서 질병 기재란에 질병이 없는 것으로 허위 표기해 운전면허를 갱신한 것으로 확인하고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부산=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