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을 얘기할 때 ‘빅(Big)5’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병원 5곳을 지칭한다. 다름 아닌 서울아산, 세브란스, 삼성서울, 서울대, 서울성모병원이다. 병상 수가 2000개 안팎에 달하고 연간 매출액이 적게는 7000억원, 많게는 2조원을 넘는 곳들이다. 한마디로 병원 덩치로 등급을 매겼다.
‘빅5’의 어원을 추적해 봤더니 국내 대형병원의 성장과 홍보 전략이 맞물려 있었다. 2000년대 들어 ‘빅3’라는 신조어가 처음 나왔다. 1990년대 후반 급격히 몸집을 불린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대병원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후 세브란스병원이 2005년 새 건물을 지어 1800병상으로 늘렸고 홍보의 일환으로 ‘빅4’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2009년 서울성모병원이 신관을 건립하고 여의도성모병원과 일부 통합해 1300여 병상을 보유하게 됐다. 이에 병원 홍보팀에서 빅5란 말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정착시켰다.
이때부터 의료계와 언론 등에 빅5가 본격 회자됐다. 빅5는 마치 최고, 최선의 의료기관 상징처럼 통용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나 관련 기관에서 내는 각종 자료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많은 병원들은 지금도 덩치 큰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규모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지만 빅5 병원들이 정말로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예’라고 답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빅5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의 산부인과 교수가 대리수술한 사실이 들통 나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의사 개인의 부도덕한 행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환자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져야 하는 의료기관에 화살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외과의사로부터 “이제 빅5가 아닌 ‘굿(Good)5’가 거론되는 문화가 새로 유행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을 지낸 한호성 교수다. 분당서울대병원이 기존 빅5 가운데 하나를 제쳤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얘기는 의외였다.
한 교수에 따르면 빅5가 최고 병원이라는 인식의 출발은 환자 수, 즉 환자 치료 경험이 많을수록 병원의 의료 수준이 높다는 다수의 보고에 기인한다. 하지만 일정한 환자 수 이상만 되면 기준에 충족되는 것일 뿐, 과도한 환자 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빅5로의 환자 쏠림이 심각한 국내 의료계 현실을 볼 때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빅5에 환자가 몰리는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과도한 쏠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빅5냐, 아니냐를 따지면서 병상이나 외래환자 수로 병원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실제 병원의 수준과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뉴스&월드 리포트는 1991년부터 매년 암을 포함한 16개 분야에서 병원 등급을 매겨오고 있다. 병원의 규모, 물적 자원 등 구조적 측면뿐만 아니라 얼마나 높은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는지 평가하는 진료 프로세스와 치료 효과, 생존율 등 치료결과 척도 등 3가지 기준을 종합해 점수화한다. 우리나라처럼 병원 규모만으로 인지도가 결정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도 큰 병원이 아닌 환자에게 얼마나 최선의 치료를 하는지, 환자 편의를 위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환자 우선 정책이 병원 전체에서 느껴질 수 있는지 등을 따져볼 수 있는 그런 잣대가 필요하다. 빅5 대신 굿5 병원이 어떨까.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세상만사-민태원] 빅5와 굿5 병원
입력 2016-08-04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