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차별에 맞서 ‘새로운 세상’ 열다

입력 2016-08-05 04:24
자메이카 다이빙 대표팀의 요나 나이트 위즈덤이 지난달 3일(현지시간) 영국 리즈시에서 리우올림픽 대비 훈련에서 다이빙하고 있다. 위즈덤 페이스북
난민대표팀 소속으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자유형 200m에 출전하는 시리아의 유스라 마르디니가 지난 7월 28일 브라질 아쿠아틱스타디움에서 진행된 현지훈련에서 역영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여자펜싱 국가대표 이브티하즈 무하마드가 히잡을 쓴 채 찌르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하마드는 지난 4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타임닷컴 홈페이지
세인트키츠네비스 육상대표팀 단거리 선수인 킴 콜린스가 2012년 3월 25일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골든스파이크 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에서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AP뉴시스
1896년 제1회 올림픽 경기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다. 참가국은 개최국 그리스를 포함해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칠레 덴마크 독일 프랑스 영국 스웨덴 스위스 헝가리 미국 등이었다. 참가 선수들도 전부 남성이었다. 대부분 백인이었으며, 참가 허락을 받은 소수의 흑인, 인디언은 백인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 20세기 인류의 역사가 그랬듯, 여성과 유색인종은 올림픽에서도 ‘세계 평화와 화합’란 기치아래 차별과 맞서 싸웠다. 편견과 차별이 없는 ‘새로운 세상(New World·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슬로건)’을 열기 위한 이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자메이카 요나 나이트 위즈덤
다이빙계 190㎝ 거구 ‘검은 돌풍’ 예고


자메이카의 요나 나이트 위즈덤(21)은 다이빙계의 ‘돌연변이’다. 수영장에서 눈총을 받는 흑인인데다 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혹독한 훈련으로 최고선수 대열에 올랐다. 리우올림픽 홈페이지는 토머스 데일리(22·영국), 우민샤(31·중국)와 함께 그를 주목할 만한 다이빙 선수로 선정했다.

나이트 위즈덤은 리우올림픽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에 출전한다. 지난 2월 열린 세계수영연맹(FINA)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자메이카 다이빙 선수론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바베이도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지가 영국이기 때문에 그는 3개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웅인 ‘단거리 제왕’ 우사인 볼트의 나라 자메이카를 택했다.

통상 다이빙 선수는 체구가 작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 3m 스프링보드 금·은·동메달리스트는 모두 키가 170㎝대였다. 그런데 나이트 위즈덤은 키 190㎝, 몸무게 90㎏에 달한다. 체구가 크면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하기 어렵고, 입수할 때 물이 높게 튀어 올라 불리하다.

그러나 나이트 위즈덤은 신체조건에 맞춰 크고 역동적인 동작을 개발했다. 흑인 특유의 탄력과 순발력도 도움이 됐다. 영국에서 훌륭한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영국 리즈에서 함께 훈련한 팀 동료 5명이 영국 대표로 뽑혀 리우올림픽에서 경쟁하게 됐다.

나이트 위즈덤은 어려서부터 수영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했다. 유럽에서 수영과 다이빙은 백인 전용 스포츠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과 편견을 극복해냈기에 세계적인 다이빙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나이트 위즈덤은 리우올림픽 홈페이지를 통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멋진 일”이라며 “평범하고 안전한 것에 안주하지 말라. 역경에 맞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난민대표팀 유스라 마르디니
‘살기 위해 친 헤엄’ 올림픽서 뽐낸다


3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윈저오세아니쿠호텔. 제129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한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 100여명의 위원들은 가슴에 오륜기를 달고 회의장을 방문한 10명의 선수를 향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난민대표팀의 시리아 남수단 에티오피아 국적 선수들을 향한 각국 대표단의 환영인사였다. 내전 중인 조국을 탈출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여자 자유형 200m 선수 유스라 마르디니(18·시리아)는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마르디니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생사의 기로에서 살기 위해 헤엄을 치고 있었다. 마르디니는 지난해 8월 내전으로 짓밟힌 고향 다마스쿠스를 떠났다. 레바논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향하기 위해 에게해를 건너는 밀항선에 올라탔다.

하지만 바다 한복판에서 배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작고 허름한 배였다. 그대로 가라앉아 모두가 죽을 위기였다. 마르디니는 용감하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3시간30분 동안 배를 밀면서 헤엄쳤다. 그렇게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도착했다. 소녀의 용기가 없었으면 세계인은 또 한 번의 ‘아일란의 비극’과 마주했을지 모른다.

마르디니는 독일 베를린에 정착해 수영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피부색도 다른 내전 피해자 10명과 대표팀을 구성해 중립국 선수 자격으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권을 얻었다. 각국 IOC 위원들의 박수는 단순한 환영인사가 아니었다. 소녀의 용기와 의지에 대한 찬사였고, 끈질긴 삶에 대한 경의였다.

꿈에 그렸던 올림픽 무대를 밟았지만 메달은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이다. 마르디니는 중동 여성이고 내전국의 난민이며 경험이나 기량도 일천한 수영 약소국 선수다. 이 모든 편견을 극복할 감동의 드라마는 오는 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아쿠아틱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여자 자유형 200m 예선에서 시작된다.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美 여자펜싱 이브티하즈 무하마드
‘히잡 쓴 검객’ 사상 첫 올림픽 나들이


“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탄압받는 무슬림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올림픽에서 무슬림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싶다.”

미국 대표팀 사상 최초로 히잡을 쓰고 올림픽에 나서는 이브티하즈 무하마드(30)가 SNS를 통해 남긴 말이다. 무하마드는 리우올림픽 여자펜싱 개인 사브르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것 말고도 다른 목표가 있다. 무슬림 또는 흑인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무하마드는 미국 뉴저지에 사는 독실한 이슬람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이슬람 율법에 따라 히잡을 썼다. 이런 이유로 어머니 조언을 구해 선택한 종목이 펜싱이다. 펜싱은 전신 운동복 안에 히잡을 착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2 런던 대회 때 인대 부상으로 출전자격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펜싱연맹(IFF) 월드컵대회 여자 사브르에 출전해 동메달을 거머쥐며 리우올림픽 출전티켓을 따냈다.

무하마드는 자신의 롤모델이 무하마드 알리와 세리나 윌리엄스라고 언급해왔다. 스포츠 스타인 동시에 인권운동을 펼친 선수들이다. 무하마드는 “어린이들은 지역과 성별 등으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어른도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롤모델을 따라 인종차별과 사회적 편견 깨기에 나서고 있다.

무하마드는 펜싱 훈련이 없을 때 온라인 의류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무슬림 여성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양한 옷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지난 4월에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최근 미국에는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단체(IS)의 테러 확산으로 이슬람 혐오주의가 번지고 있다. 무하마드의 올림픽 출전이 더 관심을 받는 이유다. 이 아름다운 도전이 리우올림픽의 슬로건처럼 ‘새로운 세상(New world)’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세인트키츠네비스 스프린터 킴 콜린스
불혹의 나이지만… 100m 메달 도전장


불혹의 스프린터는 생애 6번째 올림픽 트랙을 질주하기 위해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맸다. 지금까지 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한 적은 없었다.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처럼 결승선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전력으로 질주했다. 세인트키츠네비스 육상 국가대표 킴 콜린스(40) 얘기다.

콜린스는 이름도 생소한 중남미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세인트키츠네비스를 세상에 알린 사실상 단 한 명의 인물이다. 19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늦게 주권을 얻은 이 나라에서 총독보다 유명하다. 이 나라에는 ‘콜린스의 날’이 있다. 콜린스가 2003년 프랑스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에서 우승했던 8월 25일이다. 이 우승은 콜린스의 유일한 메이저 타이틀이다.

콜린스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부터 2012년 영국 런던까지 올림픽 트랙을 5차례나 질주했다. 하지만 3위 안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적은 없었다. 오는 14일(현지시간) 브라질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2016 리우올림픽 남자 육상 100m는 콜린스의 6번째 도전이다.

나이를 고려하면 생애 마지막 도전일 가능성이 높지만 콜린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20년 전보다 성적이 훨씬 좋아졌다. 아직 은퇴할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콜린스는 2005년부터 내리막길로 들어서면서 10초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13년 전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우승기록도 10초07이었다. 당시 세계 최강 모리스 그린(42·미국)이 준결승에서 탈락하지 않았으면 우승할 수 없는 기록이다.

그러나 불혹에 ‘회춘’했다. 콜린스는 40번째 생일을 맞고 그 다음달인 지난 5월 100m 트랙을 9초93으로 주파했다. 개인통산 최고기록이다. 저스틴 게이틀린(34·미국)의 올 시즌 최고기록 9초80, 볼트의 9초88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콜린스는 “나이 40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