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이를 위해 분투하는 것이고,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승리가 아니라 참가 자체에 의의가 있다.”
선수 선서에 나오는 올림픽 정신의 본질이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한 세계의 화합과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공정한 게임의 도를 강조한다. 하지만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약물투여, 이를 눈감아준 올림픽 위원회, 국민의 빈곤한 삶을 등한시하고 국제 행사를 유치하는 개최국, 비즈니스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본과 미디어까지 리우 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그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늘날 올림픽 게임은 본질을 망각하고 타락한 거대 종교집단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인지 올림픽 헌장은 종교개혁을 요청하는 성경 레퍼런스처럼 의식 있는 인사들의 입과 글을 통해 강조되어 왔다. 매번 올림픽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비판적 목소리가 공허해진 것은 결국 모든 돈과 명예는 승자에게만 주어지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19세기 말, 아마추어 스포츠 정신은 생업에서 벗어나 여가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상류층의 도덕적 이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선수들에게 스포츠는 더 이상 고상한 휴머니즘의 발현이 아닌 생업이며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각 선수들의 모습에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각국의 모든 선수들에게 판정은 공정해야 한다. 같은 이유에서 메달 색깔과 결과보단 이들의 도전 자체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이들의 꿈과 노력이 국가주의적 경쟁에 가려지지 않기 위해 매일 숨 가쁘게 집계되는 메달 순위도 이제 그만 매달렸으면 좋겠다. 올림픽 헌장 1장 6조는 “올림픽에서의 경쟁은 개인이나 팀의 경쟁이지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다”라고 명시한다. 그래서 헌장 5장 57조에서는 국가 간의 순위를 결정하고 발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각 국가와 매체마다 올림픽 순위 산정 방식이 다른 것은 애초부터 올림픽은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2∼14)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의 올림픽에 임하는 선수 선서와도 같다. 그리스도 안에 삶의 뜻을 세우고, 지금은 부족해도 열심히 땀을 흘리며 준비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때를 이루는 인생 경주 말이다.
지금 리우엔 수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뜻과 땀과 때가 어우러진 지점에 서있다. 지난 2012년 런던에서 마지막 시도를 실패한 후, 겸손히 기도하며 바벨에 입을 맞추는 한 여인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도전에만 집중하며 이번 올림픽을 기대하려 한다.
<윤영훈 빅퍼즐문화연구소장>
[윤영훈의 컬처 토크] 선수들의 아름다운 도전
입력 2016-08-05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