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폭염… 어르신들 안녕하실까요? 이웃 돌보는 사람들, 이야기 둘

입력 2016-08-05 20:29 수정 2016-08-05 20:37
우유업체 배달원이 4일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어르신에게 우유를 무료로 전달하고 있다.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을 창립하고 법인사무실 앞에 선 호용한 목사
김준영 전도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더함교회 성도들의 집을 방문한다.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벗이 되어드리기도 하고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일을 돕기도 한다. 김준영 페이스북
김준영 전도사는 “인터뷰를 통해서 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더 묵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보연 인턴기자
무더운 날씨가 연일 이어지면서 건강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수은주가 30도 이상 치솟는 날이 계속되자 무더위로 인한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폭염에도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살아가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서비스 등 사회안전망 체계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런 가운데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돕는 교회와 사역자 얘기는 청량한 바람처럼 느껴진다.

독거노인에게 14년째 우유배달 하는 서울 옥수중앙교회
우유 챙겨드리고 믿음 든든하게


독거 어르신에게 우유를 무료로 배달하고 안부를 묻는 지역교회의 나눔활동에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 성동구 매봉길 옥수중앙교회(호용한 목사)가 14년째 진행하는 ‘독거노인 우유배달 사업’이다.

호용한(59·한영신학대 겸임교수) 목사와 교인 700여명은 독거노인 가정에 매일 아침 배달되는 유제품이 2개 이상 방치됐을 경우, 배달원이 가족이나 주민센터 등 관련기관에 통보해 적절한 비상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교회가 우유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당시 사업을 하던 호 목사의 처남이 구제사역에 써 달라며 매달 200만원씩 2년을 기부했다. 호 목사는 그 돈으로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어르신 100명에게 우유를 배달했다.

“재개발 건축 등으로 옥수동이 살기 좋아졌지만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을 볼 때마다 건강이 염려됐고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다 건강에 좋은 우유가 생각났죠. 마침 지인과 교인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100가정에 200㎖ 우유를 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유배달 3년 후, 대문 앞에 우유가 며칠째 그대로 놓인 집이 눈에 띄었다. 이상하게 생각해 들어가 봤더니 고독사한 노인의 주검이 있었다. 집 안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호 목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런 상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부를 묻는 사역도 시작했어요. ‘우유배달 안부’를 통해 독거노인 고독사를 예방하고 있습니다.”

호 목사와 교인들은 우유를 드시는 어르신에게 한 달에 한 번 전화를 건다. 우유가 잘 배달되고 있는지, 혹시 상한 우유가 배달되지는 않았는지 꼼꼼하게 챙긴다. 두 달에 한 번씩 편지도 보내 안부를 묻고 있다.

우유를 받은 어르신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곤 한다. 또 고맙다며 음료 박스를 놓고 간 어르신도 있었다. 직접 교회예배에 참석해 감사헌금을 드린 분도 있다.

14년 전, 100가정으로 시작한 우유배달은 1000가정으로 확대됐다. ‘선한 사업’이라고 입소문이 나면서 후원자들이 잇따랐다.

이 교회 성도이자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는 매달 500만원을 후원하고 있다. 김 대표를 통해 이 사역을 알게 된 미국계 다국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직원들도 소정의 성금으로 힘을 보탰다. 매일유업과 건국유업, 코리아마커스, 이노레드, 팬타브리드 등도 매달 후원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어르신의 소화를 돕기 위해 유당을 제거한 우유를 전달하겠다고 나섰다.

교회는 지난해 12월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배달지역도 성동구 이외 지역으로 확대해 동대문구와 금천구, 광진구 강북구 관악구 등에도 신선한 우유와 따뜻한 정을 배달하고 있다.

올해 우유배달 금액은 매달 2100만원, 연간 2억5200만원에 달한다. 지금까지 6억300만원어치 우유가 배달됐다. 호 목사는 “앞으로 우유배달 사업의 수혜자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우유배달 사업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함’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독거노인의 명단 확보도 쉽지 않았어요. 예민한 개인정보잖아요. 하지만 꾸준하게 사역을 하니까 관련 기관들도 교회를 신뢰하기 시작했어요. 교회의 재정을 절약하고 사업운영을 투명하게 한 것도 한몫했고요.”

이웃사랑과 나눔을 실천했더니 채워지는 기적도 일어났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소문이 나자 갈등으로 교회를 떠났던 교인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교회 빚도 3년여 만에 갚았다.

호 목사는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나눔과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웃을 돕다 보면 교회와 예수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들이 당장 교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예수사랑을 기억하고 기독교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면 저와 후원자들은 만족할 것입니다.”

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아르바이트로 교인 돕는 충북 옥천 더함교회 김준영 전도사
근심 덜어드리고 사랑 단단하게


세차장 아르바이트로 교인들의 빚을 갚아주는 목회자 이야기가 담긴 영상 ‘인포리를 부탁해’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CGNTV의 ‘KNOCK(노크)’팀이 제작한 이 영상은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인포리 더함교회 김준영(29) 전도사 이야기다. 지난달 17일 공개된 영상은 8월 2일 현재 조회수 60만건을 넘었다.

김 전도사를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키 170㎝가 조금 안 되는 체구에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작은 체구이지만 다부진 느낌이 풍겼다.

그가 세차장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은 예배와 삶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꾸기 때문이다. 김 전도사는 “교인들의 걱정을 들어보면 대부분 돈 문제로 시름하는 분들이 많았다. 기도를 해드리지만 삶의 무게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인포리에서 세차장 일을 시작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해서 월 200만원을 벌었다. 이 중 교회 월세를 제한 후 80만원은 교인들의 빚을 갚고 30만원은 독거노인들 생활비로 사용했다.

성도들을 돕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세차장 아르바이트였지만 어깨 통증과 허리 부상으로 인해 올해 5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몸을 추스른 후에는 제초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최근엔 옥수수농사도 지었다. 친환경농법으로 2000평에 옥수수를 심었고 1만300개의 옥수수를 팔았다. 700만원의 수익을 냈다. 교인 돕는 아르바이트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정부 보조금을 못 받는 노인이 많다”며 “매달 교회에서 소액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목회자인데 농부처럼, 소처럼 일하는 그의 사례비는 얼마일까. “회계는 어머니(박형수·56)가 담당하는데 저는 30만원 받는다”고 했다. 너무 작은 금액이 아니냐고 하자 “어머니가 애인도, 자식도 없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셨어요(웃음).”

각자 살기도 빠듯한 현실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마을 어르신들의 생계를 아들처럼 챙기고 있는 김 전도사. 언제부터 이런 가족교회를 꿈꿨을까. 그는 침례신학대학교 재학 중에 만난 김현철 목사의 가르침을 통해 목회의 방향을 세웠다. 그리고 ‘가족교회’의 사명을 품고 2014년 1월 더함교회를 개척했다. ‘더불어 함께하는 교회’라는 뜻이다. 3월 첫째 주에 첫 예배를 드렸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성도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면 나눌 수 있는 게 없어요. 농사도 함께 짓고 삶도 나누며 복음을 전해요. 평소 성도들과 소통을 잘해서인지 복음 전하기가 훨씬 수월해요. 저도 성도들 가정의 세세한 것을 알고 있으니 더 깊은 기도를 하게 됩니다.”

김 전도사의 열심에 시골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씩 마음을 열었다. 첫 예배 때 성도는 14명, 현재는 50명이다. 반 이상이 노인이다. 이 중에는 불교신자, 무당, 폭력전과범 등의 이력이 있는 성도들도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옥천에서 산 그이지만 시골교회 목회는 쉽지 않았다. 사명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중보기도로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다. 김 전도사가 어머니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은 “예수님만 자랑하길, 예수님만 높이길, 삶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기를, 나는 죽고 예수님만 살길”이다.

김 전도사는 “군복무 시절 어머니에게 150통에 가까운 편지를 받았는데 편지 말미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며 “무엇을 하든 오직 예수님만이 드러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그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를 늘 고민한다. 소외되고 힘든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고백하고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070-8809-4317).

글=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