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년 1월 1일 브라질 연안을 따라 항해하던 포르투갈 탐험대는 바다가 내륙으로 깊이 들어간 만(灣)을 발견했다. 하지만 선장 가스파르 데 레모스 등은 강의 입구로 생각했다. 그들은 이곳을 ‘1월의 강’이라는 뜻의 리우데자네이루로 명명했다. 강이 없는 이 도시가 ‘리우’(포르투갈어로 강)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다. 천혜의 항구 리우는 식민도시의 전형이었다. 원주민의 노동을 착취하고 금 등 신대륙의 부를 포르투갈로 빼내갔다. 리우는 1764∼1960년 브라질의 수도였다.
리우의 영광 이면에는 어둠도 짙었다. 노예무역 전문가 다니엘 도밍게스 다 실바 미주리대 교수에 따르면 16∼19세기 550만명의 아프리카 흑인이 대서양 너머 브라질로 끌려 왔다. 그중 200만명 이상이 부려진 곳이 리우였다. 리우 근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와 사탕수수는 흑인노예의 피와 눈물이었다. 하지만 이 어둠도 리우가 내뿜는 매력을 덮진 못했다. 대서양을 덮칠 듯 해안에 치솟은 코르코바도산, 코파카바나·이파네마 해변의 장엄한 풍광이 수세기 동안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무엇보다 이질적인 것을 녹여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개방과 혼종성이 리우 마법의 원천이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가 접목된 새로운 리듬 삼바가 탄생한 곳이 바로 리우의 흑인 빈민가였다. 수십만 명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하나가 되는 열정의 축제 카니발의 주무대도 이곳이다.
5일(현지시간) 인류 최대의 축제 올림픽이 남미 대륙 최초로 리우에서 개막한다. 그동안 전 세계 미디어의 표제는 안전비상, 지카바이러스, 범죄 등 부정적인 어휘 일색이다. 하지만 실제 대회가 열리면 매년 수백만 외국인이 찾는 카니발을 치러 온 리우의 개방성과 친절이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모든 차이를 녹여내는 리우의 용광로 정신이 종교 갈등과 테러, 난민 문제로 신음하는 지구촌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배병우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한마당-배병우] ‘용광로’ 리우데자네이루
입력 2016-08-04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