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유장춘] “내 삶이 유언이다”

입력 2016-08-04 19:32

과연 ‘이색적’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한 취임식이었다. 대학총장 취임식이라면 참석하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명사들이 단상을 차지하고 장황한 인사와 축하 순서들이 지루하게 진행되다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그 긴 행사가 마무리될 것이다. 영광을 얻은 사람들과 바라보는 청중이 너무나도 멀고 다르다. 지난 1일 진행된 동아대학교 총장 취임식에도 한국사회의 최고 명사들이 참석했다는 것은 같았다. 그러나 확실히 다른 것이 있었다.

사진을 보니 단상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었다. 좌중에 내빈석이 있기는 했으나 좌석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누가 왔는지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명사들은 뒷좌석에 조용히 앉았다가 박수치고 돌아갔다. 축사는 영상물 상영으로 진행되었는데 환경미화원, 캠퍼스 경비원, 총학생회장 등이 축사에 등장했다. 신임 총장의 짤막한 취임사가 있었고 이어 음대 교수들과 학생들이 꾸민 축하무대로 취임식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조촐한 오찬이 구내식당에 마련되고 기념품은 수건 한 장이었다.

사람은 주로 말과 글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인간의 모든 결정과 행동과 실천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행동과 실천으로 표현된 메시지야말로 언어나 문서로 전달된 메시지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분명하여 더 큰 영향을 불러일으킨다. 동아대 총장 취임식도 ‘겉치레를 빼자’는 총장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총장이 내세운 교육 중심, 융합적 교육의 메시지를 그 취임식을 통해 확실하게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교육철학자 파커 팔머는 교육에 있어서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누구에게서 배웠는가가 더 중요하고, 누구에게서 배웠는가보다는 어디서 배웠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하고, 메신저보다는 그 둘러싸고 있는 생활환경과 교육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교수가 민주주의를 강의한다면 학생들은 수업에서 민주주의를 배울까, 권위주의를 배울까? 우리는 그 대답을 알고 있다. 의사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소통과 대화 기술을 가르친다면 거기에서 학생들은 의사소통의 방법을 배울까, 일방적 주장과 독선을 배울까?

지난 며칠간 서울의 한 여자대학에서 큰 소요가 있었다. 대화와 타협, 소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힘의 대결과 압력과 굴복, 승리와 패배 같은 것들이 있었을 뿐이다. 누가 먼저냐의 문제는 있었지만 자신들이 비난하는 문제를 자신들도 똑같이 갖고 있었다. 국가 고위층으로부터 날마다 권위주의적 결정들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 사회에서 상호 의사소통과 민주적 결정 과정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기적을 바라는 것이라는 자괴감이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시작은 대학에서부터 일어나야 할 것이다.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기도와 찬양, 헌금을 통하여 하나님께 믿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고백이 이웃사랑이나 양보, 희생, 관대함으로, 더 나아가 겸손과 자기비하로 나타나지는 못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의 고백은 선택과 행동, 실천, 성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을 신학적 용어로 ‘작동신학’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 실업가는 소유의 사용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교육가는 지식의 사용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정치가는 권한의 사용을 통하여 그 신앙이 고백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알기 위하여 우리의 예배보다는 작동신학을 읽으실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교회 안에서 드려지기보다 교회 밖에서 하는 예배인 것이다. 예수님처럼 “내가 곧 길이요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해도 “내 삶이 유언이다”라고 말했던 김약연 선생 같은 호방함이 있었으면!

유장춘(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