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울린 초인종 소리 때문이었나. 아픈 발가락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을까 괴로워한다. 잠이 덜 깬 상태로 거실로 달려 나가는 길이었다. 몸의 반은 문을 통과하려 하고, 나머지 반은 벽을 들이받았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다친 발에 부분적으로 깁스를 한다. 간호사가 목발을 건네준다. 내가 당황해서 머뭇거리자, 다친 발가락을 자꾸 디디면 뼈가 쉽게 붙지 않거나 어긋날 수 있다고 설명을 한다.
병원에서 나와 서툴게 목발을 짚고 걷는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어떡하다가 다쳤냐며 혀를 찬다. 마주오던 이들은 내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몇 발짝 앞서 가던 이는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보도의 턱을 내려가는데 조심하라는 주의가 뒤따라온다. 낯선 이들의 관심을 이렇듯 한 몸에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이제껏 어디서나 눈에 잘 띄지 않고 기억에 남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 왔다. 목발을 짚으니 움직임이 힘들고 느린 게 가장 불편하지만, 남들과 달리 보여 눈에 띈다는 것도 뜻밖에 큰 불편이다. 빼어난 외모나 뛰어난 능력으로 만인의 주목을 받으며 사는 이들이 늘 궁금하고 부러웠다. 그들이 해피엔딩 판타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다친 발을 이끌고 거리를 걷고 있는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 영화의 조연쯤이지만, 어떤 배역이든 두드러져 보이는 삶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 사이로 나를 숨겨주고 보호하던 평범함이 그립다.
우리는 동일한 출발선에서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 부유함은 좋은 운의 힘이 크고, 잘나고 못났다는 평가도 일정 부분 시대의 경향성에 좌우된다. 어떤 이들은 아무 잘못 없이, 혹은 이유도 모르고 평생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한 채 온갖 불편과 차별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기껏해야 남보다 사랑받지 못하고 남보다 뛰어나지 못하고 남보다 주목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슬퍼하고 우울해 하던 나는 작고 어리석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글=부희령(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목발을 짚다
입력 2016-08-04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