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장사” “순혈주의”… 학교도 학생도 ‘상처’

입력 2016-08-04 04:00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3일 학생들이 점거농성 중인 서울 서대문구 이대 본관 앞에서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 철회 결정을 발표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농성을 벌인 지 6일 만이다. 구성찬 기자

3일 정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정문 앞에 최경희 총장이 마이크를 잡고 섰다. 최 총장 주위로 교직원 30여명과 취재진이 몰렸다.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던 학생 중 일부도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최 총장은 “학생들을 보호하고 구성원 의견을 존중한다는 차원”이라며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사업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본관 점거농성에 들어간 지 6일 만이다.

이화여대 사태는 학내 농성, 교직원 감금, 대학캠퍼스 내 경찰 투입, 졸업생들의 ‘졸업장 반납 시위’를 거치면서 뜨거운 논란을 빚었다. 1주일간 농성은 지성 대신 ‘학위장사’와 ‘순혈주의’라는 대학의 민낯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앞서 최 총장은 이날 오전 긴급 교무회의를 열고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을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일까지만 해도 “이사회 승인까지 난 것이기 때문에 원칙상 철회는 어렵다”고 했지만 사태가 악화되자 결국 손을 들었다. 지난 2일 졸업생들이 모여 졸업장 반납 시위를 한 데다 교수진과 총동창회마저 부정적 입장을 보인 점이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졸업생들의 졸업장 사본 600장이 이화여대 교문 벽에 나붙기도 했다.

교육부는 이화여대의 철회 의사를 받아들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측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육부와 총장 명의 공문이 내려올 때까지 농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학생과 졸업생 5000여명(경찰 추산)은 이날 밤 이화여대 교문 앞에 모인 뒤 농성 중인 본관까지 행진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총장 사퇴를 요구했다.

학교 측의 사업 철회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학교나 학생 모두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학생들의 문제제기 방식과 대학 측의 강행과 철회 결정 모두 비판받는 상황이다. 우선 대학 캠퍼스로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뿌리 깊은 불신과 불통을 드러냈다. 지난달 30일 경찰 1600여명이 40여시간 동안 감금됐던 교수와 교직원을 구출하기 위해 본관으로 진입하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둘러싼 인식 차이는 여전하다. 학생들은 입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새로운 단과대를 만들어 학생을 모집하는 것은 ‘등록금 장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학생들의 격렬한 저항에 상당수 졸업생과 학부모까지 동조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까지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을 보였다.

이를 두고 ‘이대 프리미엄’ 등 순혈주의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의 직장인들이 ‘이화여대 졸업장’을 받는 걸 반대하는 게 사태의 본질 아니냐는 지적이다. 입시라는 관문을 통한 대학 입학만 강조하는 것도 평생교육이 확대되고 있는 최근 교육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