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도 안 듣는 트럼프… 공화당 지도부와 내전

입력 2016-08-04 04:00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왼쪽)가 2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서 열린 유세에서 ‘퍼플 하트’ 훈장을 자신에게 선물한 예비역 중령 루이스 도르프만과 함께 서 있다. 퍼플 하트는 상이군인이 받는 훈장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훈장을 갖고 싶었다. (군대 가는 것보다) 훨씬 쉽게 얻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그는 베트남전 징집을 다섯 차례나 면제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자신을 비판한 공화당 중진들을 거세게 공격했다. 안 그래도 불안했던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의 연대가 본게임 초입부터 깨질 위기에 처했다고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틈을 노려 전례 없이 신랄한 어조로 트럼프를 공격하면서 공화당에 트럼프와 절연(絶緣)할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는 일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당내 경선에서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근 이라크전 전사자 가족 조롱 발언을 놓고 라이언과 매케인이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발끈한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비난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전사자 부모 키즈르·가잘라 칸 부부가 자신을 비판한 것에 발끈해 이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다가 역풍을 맞았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늘 선을 넘었지만 이번처럼 멀리 간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넘어선 안될 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데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버지니아TV 인터뷰에서 “칸 부부와 충돌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모들은 빨리 사과하고 설화에서 빠져나오라고 조언하지만 트럼프는 계속 무시하는 중이다.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설화 관련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부적합하다”고 일갈했다. 오바마는 “전사자 가족을 공격해도 된다는 생각, 유럽·중동·아시아 중요 이슈에 기본적 지식도 없어 보인다는 사실은 한심스러울 정도로 대통령 직무에 준비가 안 됐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 지도부도 매일 트럼프의 발언과 거리를 두고 있다”며 “이제는 ‘더는 안 된다’고 말할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공화당 3선 하원의원 리처드 한나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를 싫어하는 공화당 의원은 많지만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것은 한나가 처음이다. 컴퓨터 제조사 HP의 최고경영자(CEO)로 공화당의 주요 돈줄인 멕 휘트먼도 클린턴을 돕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트럼프는 문제적 언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버지니아주의 한 유세장에서 우는 아기 때문에 당황해하는 엄마를 처음에는 안심시키더니 2분도 지나지 않아 “아기를 데리고 나가도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우는 아기를 내쫓은 것을 두고 팀 케인 민주당 부통령 후보는 “누가 아기인지 헷갈리지 않냐”고 비꼬았다.

트럼프는 일간 USA투데이 인터뷰에선 “큰딸 이방카가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방카가 다른 직종이나 회사를 찾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대신 퇴사를 권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