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언제 안 그런 적이 있었냐마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흠집투성이의 교회 모습에 실망해 기독교에 등을 돌린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선 새로운 크리스천들이 탄생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하루에 약 7만명이 새롭게 예수를 믿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었다. 기독교란 종교가 가진 이 놀라운 생명력의 근원에 ‘예수’가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싫어도 예수에 대해서는 궁금하고 여전히 알고 싶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들은 메시야 예수가 아니라 1세기 팔레스타인 땅에서 활동한 인간 예수에 더 주목하는 일련의 흐름으로 표출됐다. 18세기 후반 독일의 신학자 헤르만 사무엘 라이마루스가 ‘신격화한 예수’에 반기를 들고 인간 예수에 주목한 이래로, 성경을 떠나 예수란 인물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것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20세기 초반 신학자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역사적 예수 연구는 연구자 개인의 이상을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며 사실상 종결되는 듯 하던 역사적 예수 연구는 1950년대 불씨가 살아난 뒤 80년대 이후 여전히 폭넓게 진행 중이다.
이 책은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펴낸 입문서 시리즈(Very Short Introduction)의 예수 편을 번역한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저명한 신약학자이자 성공회 신학자다. 2009년 ‘예수와 그 목격자들’로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신학 저작에 수여하는 마이클 램지상을 수상했다.
보컴은 서문에서 “복음서가 다루는 역사적 예수에 집중하되, 예수에 관한 다양한 접근 방식과 결과물을 모두 담지는 않기로 했다”며 “내가 택한 접근 방식은 다른 방식들과 마찬가지로 논쟁적”이라고 적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학자들이 성경의 복음서가 역사적 자료로 충분치 않다고 보는 것과 달리 “네 권의 복음서는 예수가 살았던 1세기 맥락에서 예수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과 그 방식은 물론,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에 주목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예수를 윤리 교사나 사회 개혁가로 보곤 한다. 이런 견해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그러나 예수의 활동을 촉발한 것은 그의 하느님 경험이다.…하느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문제도 매우 중요했지만, 예수는 그 해답을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그 분이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지를 모르고서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67∼68쪽).”(출판사는 이 책에서 공동번역 성경에 따라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번역했다.)
특히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강조할 때와 달리 하나님을 직접 부를 때는 단 한 번도 ‘왕’이라 하지 않고 주로 ‘아버지’라 불렀음에 주목한다. 그는 예수가 하나님을 ‘왕’에 빗대는 것의 한계를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통치의 본질적 성격을 ‘아버지 되심’으로 묘사했다고 포착해낸다.
아울러 네 권의 복음서가 당대 목격자들의 증언이라는 관점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도 새롭게 조명한다. 이렇듯 보컴이 재구성한 예수의 모습은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 알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사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다는 논란 때문에 한국교회 안에서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하지만 보컴의 이 책은 사복음서를 토대로 재구성한 예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예수와 신앙 사이에 다리를 놓고, 예수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돕는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선행한다면, 내 신앙 안의 예수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하며 선택적으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염두에 둔 듯 보컴은 책 말미 ‘더 읽어보기’를 통해 다양한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옮긴이 역시 10여쪽 분량의 글을 통해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이해와, 그 논란 가운데 보컴의 책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적어뒀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사전 정보가 별로 없는 이들이라면 옮긴이의 글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복음서 속 살아 숨쉬는 ‘인간 예수’를 만나다
입력 2016-08-03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