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POSCO)에 입사할 때만 해도 ‘어떻게 하면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 10년이 넘어 가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워낙 큰 조직이라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한계를 느낀 적도 많았다. 작더라도 조직의 방향을 직접 결정하고 업무를 집행해보고 싶었다.
2년여 간 해볼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1983년 화물차 20대로 물류업에 뛰어들었다. 창업하던 날 직원들과 시무예배를 드리면서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회사를 경영할 것을 다짐했다. ‘유성화물(현 유성티엔에스)’이란 이름으로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부제철 등 국내 철강사 물류운송사업을 하며 규모를 키워갔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4년차에 위기가 찾아왔다. 87년 6·29선언과 함께 전국적으로 노사분규가 극심해지면서 많은 물류업체들이 문을 닫게 됐다. 나는 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농사일하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진솔하게 꺼냈다.
“제가 온갖 설움 속에 농사일 하면서 다짐했던 것이 ‘논의 주인이 되면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으며 함께 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업 때부터 여러분은 사랑하는 제 가족이었습니다.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함께 이겨냅시다.”
직원들의 눈빛에 애정이 엿보였다. 그날 이후 직원들은 어려운 순간마다 주인의식을 갖고 더욱 책임감 있게 회사 일에 임했다. 가족 같은 마음으로 상호 신뢰를 쌓은 것이 일터의 어려운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물류업 창업 12년째인 94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건설업으로 확장을 꿈꾸게 됐고 서희건설을 설립했다. 사훈은 ‘목표 확신 사랑’으로 정했다. 목표를 세웠으면 그 목표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목표를 이뤄가는 모든 과정이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목표를 이뤘을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음을 뜻한다.
서희건설은 매년 시무예배를 드린 후 업무를 시작한다. ‘유성화물’ 시절부터 이어온 ‘신앙 위에 선 기업’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2년 동안 IMF 경제위기, 리먼 브러더스 사태, 유럽 발 금융위기 등 수많은 어려움이 찾아왔다. 2013년에는 2년 연속 적자를 내며 풍파를 겪었다. 대형 건설사들과 손잡고 3조원 규모의 복합개발단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대형복합상가 시공을 맡았다가 많은 손해를 봐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다. 현실적인 고민들을 안고 무릎으로 기도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업이 굳건히 견디게 해주셨다.
숱한 어려움들을 이겨내면서 깊이 새긴 교훈은 하나님께서 양보하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거주할 땅의 선택권을 양보했지만,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며 복을 주신 것처럼 말이다. 양보하는 것이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내가 선한 마음으로 양보하면 하나님께서 큰 복으로 돌려주신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창립 이후 짧은 기간 동안 매출 1조 5000억원, 업계 28위의 탄탄한 건설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양보의 마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이봉관 <9> 믿음을 자본으로 기업 운영… 잇단 위기 견뎌내
입력 2016-08-03 20:36 수정 2016-08-04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