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IB 키운다… 3조·4조·8조로 나눠 차등혜택

입력 2016-08-03 04:02

정부가 ‘한국형 골드만삭스’ 육성 정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국내 증권사에 자기자본별로 업무 확대 등 혜택을 주기로 했다. ‘우물 안 개구리’ 평가를 받는 한국 증권사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다.

논란이었던 자기자본 기준은 3조·4조·8조원으로 나눴다. 각각 차별화한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자기자본이 4조원대에 못 미치는 증권사들의 인수·합병(M&A)과 증자 등이 불붙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2일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자기자본 10조원 이상 초대형 투자은행 육성이 목표다. 이르면 다음해 시행된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한국형 투자은행으로 불린다. 2013년 발표된 기존 제도에선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에 기업 신용공여 업무를 허용했다. 증권사들을 투자은행으로 키워 혁신기업 투자를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3년 넘게 국내 증권사는 중개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미흡한 자본 규모가 이유로 꼽힌다. 한국에선 미래에셋-대우증권 합병법인이 자기자본 6조7000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하지만 일본 노무라홀딩스(28조1000억원), 중국 중신증권(25조6000억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업계 1위 미국 골드만삭스의 자기자본은 91조원이다.

이번 개선 방안은 당초 자기자본 5조원 기준으로 혜택을 차별화하려 했으나 기준을 3단계로 나눴다. 유일하게 5조원을 넘는 미래에셋 합병법인에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우선 기존 3조원 이상 증권사는 기업 신용공여 한도가 확대된다. 다른 신용공여와 별도로 기업 신용공여를 자기자본 100%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다자간 비상장주식 매매 중개 업무도 허용된다.

4조원 이상 라이선스를 받는 증권사는 어음 발행 업무를 자기자본 200% 한도 내에서 할 수 있게 된다. 기업 외환 매매 업무도 허용된다. NH투자증권(4조5000억원)도 포함된다. 자기자본 8조원 이상 ‘메가 증권사’는 종합투자계좌(IMA)로 일반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모아 기업에 빌려줄 수 있다. 부동산 담보 신탁 업무도 허용된다.

8조원에 가장 근접한 증권사는 미래에셋 합병법인이다. 다만 유진투자증권 서보익 연구원은 IMA 혜택이 무리한 자본 확충까지 부를 정도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서 연구원은 “양적 한도 없이 자금을 조달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수익률 등이 유사하다”며 “향후 강화된 라이선스가 추가로 부여되면 자본 확충을 고려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지원 기준을 당초 5조원에서 4조원으로 낮춰 잡은 것에 대해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날 “이번 방안이 업계의 야성적 충동과 무한경쟁을 깨울 계기가 될 것”이라며 “크게 환영한다”고 말했다. 다만 “발행 어음 등 업무가 4조원 미만 금융투자업자에 적용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한국투자증권(3조2000억원), 삼성증권(3조4000억원), 합병 예정인 현대증권-KB투자증권(3조8000억원)의 추가 자본 확충 경쟁도 불붙을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매물로 나온 하이투자증권(7000억원) 인수전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