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장서… 선거판 뒤흔드는 일반인들

입력 2016-08-03 04:00
지난달 28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연사로 나선 전사자 아버지 키즈르 칸이 헌법책을 들어 보이며 트럼프를 향해 “헌법을 읽어본 적은 있느냐”고 외치고 있다. 아래 사진은 2008년 미 대선 때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왼쪽)와 유세장에 함께 나온 ‘배관공 조.’ AP뉴시스, 위키피디아 제공

선거운동 기간 중에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돌발변수로 부각돼 판세를 뒤흔드는 경우가 간혹 있다. 최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궁지에 몰아넣은 이라크전쟁 전사자의 부모 키즈르·가잘라 칸 부부가 그렇다.

2일 영국 BBC방송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일격을 가해 ‘깜짝스타’가 된 배관공,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를 실각하게 만든 할머니, 존 메이저 보수당 대표를 영국 총리로 만들어준 중이염 앓던 소녀를 소개했다.

스스로를 배관공이라고 밝힌 새뮤얼 조지프 워젤바처는 2008년 미국 대선 때 오하이오주에서 유세 중이던 오바마에게 다가가 고소득자 세금인상 공약이 잘못이라고 따졌다. 이 장면이 방송되면서 워젤바처는 일약 유명 인사가 됐다. 이후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는 TV토론 때마다 워젤바처의 별명인 ‘배관공 조’를 언급했고 유세장에도 그를 대동했다. 그러나 유명세의 대가로 언론의 검증이 시작됐고, 배관공 조가 배관공 자격증이 없는데다 소득세를 체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0년 재선에 골몰하던 브라운 총리는 유세 중 길리언 더피라는 65세 여성과 맞닥뜨린 게 화근이 됐다. 이 여성은 브라운 총리를 쫓아다니며 이민·범죄 정책의 문제점을 계속 지적했다. 겨우 둘러댄 뒤 차에 탄 브라운 총리는 방송용 마이크가 옷에 달려 있는 줄도 모르고 “끔찍했다. 저런 여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누구 아이디어였느냐. 아주 웃긴다. 자기가 노동당원이었다고 주장하는, 편견이 아주 심한 여자다”라고 투덜거렸다. 이 발언은 고스란히 방송에 나왔다. 브라운 총리는 즉각 사과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결국 선거에서 지고 총리직을 잃었다.

1992년 영국 총선 때는 중이염 수술을 기다리던 5세 소녀 제니퍼 베넷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노동당은 보수당 정부의 잘못된 보건정책 사례로 이 소녀를 앞세웠다. 하지만 담당 의사가 반박하면서 오히려 노동당에 역풍으로 작용했다. 결국 메이저 대표가 이끄는 보수당이 선거에서 압승했다.

최근에는 12년 전 이라크에서 숨진 후마윤 칸 대위의 부모가 트럼프의 치명적인 자살골을 유도했다. 칸 부부가 지난달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 공약을 비판하자 트럼프가 이들을 비난하고 조롱했다. 전사자 유족 공격이라는 금기를 깬 트럼프는 당 안팎에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