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일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골자로 하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부자 증세’는 더민주의 일관된 주장이지만 정부·여당의 반대에 막혀 번번이 구호에 그쳤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판 자체가 달라졌다. 여소야대 3당 체제인 데다 국회의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모두 야당 출신이다. 국민의당 역시 부자 증세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어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더민주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세부담률 상향, 고소득자·법인 우선 부담, 중산층·서민·임금근로자 부담 경감을 세법 개정의 3대 원칙으로 꼽았다. 이를 위해 우선 과세표준(세금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금액) 500억원 초과 법인에 적용되는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리기로 했다. 또 과표 5000억원 초과 기업의 최저한세율을 17%에서 19%로 높이는 안도 담았다. 각종 공제·감면 제도 등을 통해 세금이 깎여도 반드시 내야 하는 기준선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더민주는 최저한세율이 2% 포인트 올라가면 42개 법인이 연간 12조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소득세도 고소득자의 부담을 높이는 쪽으로 손봤다. 연소득 5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41%의 세율을 적용하도록 했다. 현재는 1억5000만원 초과 소득자에 38%가 적용된다. 이와 함께 저소득층의 대학등록금에 대해 최대 200만원까지 공제·환급하는 기회균등장려금 도입도 제안했다. 연소득이 2500만원(맞벌이 기준) 이하 저소득층에 지급되는 근로장려금 역시 수급 기준은 완화하고 지급 금액은 높였다.
변 정책위의장은 “정부는 부자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을 시도했지만 성장률은 제로(0) 상태까지 내려갔다”며 “이대로는 저성장·저부담·저복지의 틀을 깰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발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부와 논쟁을 벌일 각오를 하고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소득자 증세 얘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면세자 비율 조정에 대해선 정부·여당과 협의 아래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만 했다. 전체 근로소득자의 48.1%(2014년 기준)에 달하는 면세자 비율을 줄여야 한다면서도 반발을 의식해 공을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은 소득세율·법인세율 인상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변수는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초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올리면서 동시에 면세 비율을 줄여 세원을 넓히는 투트랙을 기본 방향으로 세법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법인세는 명목세율은 그대로 두고 실효세율을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당이 정기국회 시작 전 이달 중순쯤 안을 발표하면 세법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법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와 법제사법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올라가는 게 원칙이지만 세입예산안 부수 법안으로 지정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2012년 개정된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매년 11월 30일까지 예산안과 부수법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다음 날 바로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예산안 부수법안을 지정할 정세균 국회의장은 더민주 출신이다. 본회의에 상정되면 새누리당이 반대해도 더민주(121석)와 국민의당(38석)이 합심해 표결 처리할 수 있다.
권지혜 기자
더민주 ‘부자 증세’ 시동… 여소야대 국회 세법전쟁
입력 2016-08-0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