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다시 ‘정의란 무엇인가’

입력 2016-08-02 19:20

인천지검 2차장검사 시절 진경준은 공식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교수(하버드대)는 정의로운 사회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일부 부유층의 금전 만능주의와 도덕 불감증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2012년 일이다. 100억원 넘는 시세차익을 얻게 된 넥슨재팬 비상장 주식 매입자금 4억2500만원을 공짜로 챙긴 게 2005년, 그 때부터 공짜 해외여행도 시작됐다. 2010년에는 한진그룹 내사를 종결하고 처남 회사에 일감몰아주기(총매출 130억원)를 먼저 요구했다.

샌델은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썼다. 공동체주의자라는 용어를 처음 쓴 그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무엇보다 정의가 필요하다고 내내 강조했다. 1999년 하버드대 로스쿨을 다닌 진경준은 아마 샌델 교수의 강의를 들었을 것이다. 정의와 공동체를 강조한 진경준, 참 어이가 없다.

김영란법은 분노 때문에 제정됐다. ‘벤츠 여검사’와 ‘스폰서 검사’가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분노한 여론은 우리 공동체에 정의와 공정성, 형평성이 존재하느냐고 물었다.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 등 전현직 검사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 또는 합리적 의심에 따른 비리 의혹은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또다시 만들었다. 세 사람 모두 대한민국 간판급 검사들이다. 눈물 날 정도로 웃픈 현실이다. 정치 검찰, 정권 시녀, 금품수수 비리, 편파 수사 의혹 등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진 검찰 흑역사는 여론의 분노 비등점을 시험하는 것 같다. 김영란법 제정과 검찰 개혁 필요성은 역설적이게도 검찰 스스로 제공했다. 그래서 사회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온다.

그런데도 검찰은 아킬레스건을 절묘하게 피해 나간다. 특임검사는 한진 내사 종결과 처남 회사 일감몰아주기의 인과관계에는 진경준의 ‘직무상 위법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홍만표를 수사한 검찰은 현직들의 전관예우와 관련된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몰래 변론’ 행위를 공소 내용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직무상 위법성이나 현직 관련 전관예우, 몰래 변론이 입증되면 검사가 사적 이익을 위해 사건을 봐줬다는 뜻이 된다. 개인 일탈이나 혼자 먹은 뇌물이 아니라 구조적·조직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검찰은 직접 수사권, 경찰 수사 지휘권, 영장청구권, 독점적 기소권, 기소재량권, 공소취소권, 형집행권 등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니 검찰이 혐의가 없다면 없는 거고, 뭔가 있다면 계속 수사하는 거고, 수사상 필요하면 별건이건 가족이건 친족이건 조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찾지 못했단다.

대다수 검사들은 공동체를 위해 정의감을 갖고 거악 척결에 집중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제는 검사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비대한 검찰 권력은 일정한 통제를 받을 때가 됐다. 전국 2000명 검사들도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검찰이 이런저런 개혁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아마 위기 때마다 발표했던 대책을 용어만 고쳐 재활용 수준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권한을 분산시키는 검찰개혁안을 국회가 내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검찰 출신 의원이나 곳곳의 우군들이 검찰의 저항에 힘을 보탤지도 모르겠다.

국회는 검찰 출신 의원을 배제시킨 검찰개혁특위를 만들어야 한다. 대신 특위 산하에 검사 등 각계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면 된다. 특위 내 소위의 심의내용은 토씨까지 공개하고, 특위안은 법사위를 거치지 말고 본회의 의결토록 해야 한다. 검찰 개혁이 도루묵이 되지 않도록 못을 박아야 한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