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창균] 문제는 대학이다

입력 2016-08-02 19:19

서울의 여자대학에서 학생들이 학교시설을 점거하고 교직원을 감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방학이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수백명의 학생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내신과 수능에 기반한 기존 방식과 다른 기준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치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사태를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코 소수 강경세력의 일탈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십여년간 학생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봤던 필자는 문제의 본질이 억울함과 걱정인 것으로 판단된다. 어떻게 들어온 대학인데 누구는 시험도 없이 그냥 들어온다고? 안 그래도 취업이 힘든데 실력도 안 되는 졸업생이 양산된다면 취업시장에서 내 졸업장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설마하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나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다. 학생들은 이제 스카이를 넘어서서 이십여개에 달하는 서울 소재 대학을 전부 서열화해 외우고 다닌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지잡대’라는 입에 담기도 민망스러운 비속어를 만들어 도매금으로 취급하고 있다. 출신 대학이 사회적 성취를 결정한다는 부모 세대의 잘못된 믿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결과다.

학벌지상주의의 폐해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문제의 상당 부분이 출신 대학을 절대시하는 사회적 인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저출산 문제다. 젊은이들이 결혼이나 출산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데는 자녀교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엄청난 사교육비 지출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여타 회원국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은 수준인 노인빈곤 문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말하면 노인빈곤은 청장년기에 저축을 충분히 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소득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자산을 늘리고 부채를 줄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년에 접어들기까지 부채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관찰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녀교육이나 결혼과 관련된 비용이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획일화된 대학의 학생 선발 기준에 맞춰 고착된 주입식 교육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필자도, 필자의 부모 세대도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 세계가 감탄해 마지않는 경제적 성공을 이루어냈다. 그래서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큰 오산이다. 이제까지는 선진국의 앞선 기술을 배워서 몸집을 키우는 소위 따라잡기(catch-up) 방식의 성장이 가능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성장의 동력이 되는 기술과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할 처지다. 세계는 신기술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의 격랑 속으로 빠르게 빠져들고 있다. 주어진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생존마저도 장담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교육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필자는 대안 없는 비판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대학 서열화와 그에 따른 문제만큼은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으나 불행히도 사회적 동의를 얻은 대안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 서열화 문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를 논의하는 것이라도 지금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박창균(중앙대 교수·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