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생명교회-고기교회] 흙 내음, 사람 내음 물씬… 숲속 작은 교회

입력 2016-08-02 21:02
학부모들이 지난달 28일 경기도 용인 고기교회에 있는 ‘밤토실 어린이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낚싯줄에 인형을 묶어 조종하는 인형극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용인=김보연 인턴기자
광교산 숲 속에 자리 잡은 고기교회 예배당. 용인=김보연 인턴기자
고기교회 김준표 부목사
지난달 28일 찾은 경기도 용인 고기교회(안홍택 목사). 평일인데도 예배당 옆 ‘밤토실 어린이 작은 도서관’은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아이들 20여명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학부모 5명의 동화구연이 시작된 건 이날 오후 3시쯤이었다.

“여러분, 방학 잘 보내고 있죠? 오늘 우리는 생각이 깊은 생쥐 ‘프레데릭’을 만날 거예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주세요. 자, 박수∼.”

학부모들은 동화구연과 함께 낚싯줄에 생쥐 인형을 묶어 조종하는 조촐한 인형극 무대를 선보였다. 15분 남짓한 공연이 펼쳐지는 내내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이야기를 경청했다. 인형극이 끝나자 학부모들은 고개 숙여 인사했고, 아이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아담한 숲 속의 작은 교회

특이한 건 행사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이 교회 교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교회가 위치한 용인 고기동 일대에 사는 주민이었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어린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도서관은 고기동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기교회가 132㎡(약 40평) 남짓한 담임목사 사택을 개조해 도서관을 개관한 건 2006년이었다. 고기동 아이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었다. 소박한 규모의 도서관이지만 장서는 1만권이 넘었다. 책들은 도서관 십진분류법에 따라 정돈돼 있을 만큼 나름의 ‘체계’까지 갖추고 있었다.

도서관만큼이나 이색적인 건 교회의 외양이었다. 예배당은 아담하면서도 고답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교회가 위치한 곳은 광교산 숲 속.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이 교회를 찾으려 했다가는 헤매기 십상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용인서울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서분당IC에서 빠져 동막로 두밀로 고기로를 차례로 타야하는데, 대로변에는 교회 위치를 알려주는 이렇다 할 이정표가 없었다.

1982년부터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김영순(76) 장로를 만난 곳은 도서관이었다. 김 장로는 “우리 교회는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말 좋은 교회라고 생각해요. 복음을 실천하는 교회라고 자부합니다(웃음).”

예배당 뒤편으로 가자 1157㎡(약 350평) 크기의 논이 나타났다. 논의 3분의 1 면적은 교인들이 직접 경작하는 땅이었다. 교인들은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면 벼를 탈곡해 잔치를 벌인다. 햅쌀로 밥을 지어 식사를 하고 떡을 쪄먹기도 한다. 논은 아이들이 자연 생태를 배우는 학습장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특이한 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교회 입구에는 비닐하우스 한 동이 설치돼 있었는데,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페가 나타났다. 카페 상호는 ‘그냥…카페’.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주일에 운영되는 이곳에서는 손님을 상대로 ‘공짜 커피’를 제공하고 있었다.

카페는 고기동의 상설 벼룩시장이기도 했다. 가게 한쪽에는 주민들이 기부한 헌옷가지 등이 내걸려 있었다. 비닐하우스 나머지 공간은 주민들을 상대로 목공 교육이 이뤄지는 목공소였다.

비닐하우스는 왜 세워졌고, 이 공간이 카페와 목공소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부목사인 김준표(46) 목사는 “비닐하우스는 과거 안홍택 목사님이 난을 키웠던 장소”라고 설명했다.

“교회 살림을 꾸려나가기 어려웠던 시절, 목사님이 난이라도 키우면 교회 살림에 보탬이 될 것 같아서 비닐하우스를 지었다고 합니다. 제가 카페 찻값을 조금이라도 받자고 말씀드리니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세상에는 아무런 대가없이 오가는 선물도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웃음).”

고기교회에는 없는 것들

고기교회 출석 교인은 120명 안팎이다. 하지만 이들 중 주민은 30여명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이 교회의 독특한 사역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기교회를 찾아온 외지인이다. 교회의 ‘명성’은 이 교회가 여타 교회들이 으레 하는 것들을 하지 않는 데서 기인하고 있었다.

예컨대 이 교회에는 새 신자 양육 프로그램이 없다. 전도 축제 등의 행사도 열지 않는다. 예배당에는 의자도 없어 교인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 좌식으로 앉아 예배를 드려야 한다.

교인들에게 헌금을 재촉하거나 독려하지도 않는다. 주보에 누가 얼마를 헌금했다고 명시하는 일도 없다. 교적부도 없어 어느 누구도 재적 교인이 몇 명인지 모른다. 주민들이 제 집 드나들 듯 교회를 오가지만 이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전도에 나서지도 않는다.

김 목사는 “개종을 목표로 억지로 전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고기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전파하다보면 어느 순간 이 세상엔 주님의 진리가 스며들 거니까요.”

고기교회 김준표 부목사
“이웃을 섬기고 연대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


“너무 조심스럽네요. 담임목사님이 안 계신 상황에서 제가 설명 드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지난달 28일 경기도 용인 고기교회를 찾았을 때 김준표(사진) 부목사는 이 말을 반복했다. 그는 안식년을 맞아 부재중인 이 교회 안홍택 담임목사를 대신해 지난 6월부터 교회 운영을 도맡고 있다. 고기교회를 소개하는 기사에 자신의 이름이 부각될까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연세대 사학과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온 김 목사는 서울 강남향린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다가 지난해 11월 고기교회에 부임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인 강남향린교회 목회자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산하의 고기교회에 둥지를 튼 건 안 목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저희 집이 용인에 있어서 예전부터 안 목사님과 잘 알고 지냈어요. 고기교회에서 벌이는 사역들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죠. 지역과 함께 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안 목사님이 어느 날 교단은 다르지만 같이 일을 해보자고 해 고민 끝에 고기교회에 부임하게 됐습니다.”

그가 고기교회를 섬기면서 되새기게 된 것은 교회의 본분이었다. 김 목사는 “예수님은 서로를 섬기라고 강조하셨다. 이웃을 섬기고 이들과 연대하는 건 교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고기교회는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주민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 디아코니아 정신일 겁니다. 고기교회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 그 안에서 공동체성을 복원하고 유지하는 사명을 감당해나갈 거예요.”

용인=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