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에 이어 이번에는 외제 승용차가 ‘광란의 질주’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지난 17일 강원도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관광버스 사고 이후 14일 만에 충격적인 사고가 다시 일어난 것이다. 관광버스가 시속 105㎞로 뒤에서 들이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도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던 승용차가 뒤에서 차량 7대를 잇따라 들이받아 발생했다. 이 사고로 휴가차 부산 해운대에 놀러 온 모자가 참변을 당하는 등 3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다쳤다.
경찰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가해 차량을 운전한 푸조 승용차 운전자 김모(53)씨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김씨는 뇌질환의 일종인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 이번 사고는 허술한 운전면허 제도로 인한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고 현장 주변 CCTV 등에 따르면 운전자 김씨는 대천공원에서 미포 방향으로 달리면서 제한속력 이상으로 달렸다. 김씨는 사고 직전 사고 현장에서 300m 떨어진 곳에서 엑센트 승용차의 뒷범퍼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곧바로 사고 지점에서 급과속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 5명을 친 뒤 차량 7대와 잇따라 충돌했다.
사고가 발생한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문화회관 교차로 주변 도로는 최고속력이 시속 60㎞로 제한된 곳이다. 경찰이 사고 현장을 조사해보니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나타나는 스키드마크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 차량은 최소한 100∼120㎞ 속력으로 질주했고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 가해 운전자는 피서 인파로 교통량이 절정에 달했던 주말 오후 해운대 도심에서 왜 100㎞ 이상의 속력으로 ‘광란의 질주’를 했을까. 경찰은 김씨가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는 뇌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울산의 모 병원에서 뇌전증 진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같은 해 11월부터 하루 5알씩 두 차례 약을 먹었으나 사고 당일에는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현재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는 김씨는 사고 당시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2년 전에는 보행로를 타고 올라가는 비정상적인 교통사고 전력까지 있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고는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이 ‘광란의 질주’를 야기한 원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씨는 또 여러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전부터 당뇨병을 앓아 왔고 지난해 병원에서 심장 확장 시술을 받았다. 김씨는 2013년부터 2년간 세 차례나 자체 피해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1993년 운전면허를 취득한 뒤 그동안 2번의 적성검사를 받고 면허를 갱신했지만 뇌질환에 대한 검증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 운전면허시험은 정신질환자나 뇌전증 환자는 응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면허시험 응시자가 병력을 밝히지 않으면 면허취득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면허취득 전 시행하는 신체검사도 시력, 청력, 팔·다리 운동 등 간단한 테스트만으로 통과할 수 있다.
경남지방경찰청 하임수 경비교통과장은 “뇌전증 등의 환자는 진료를 받으면 도로교통법에 따라 병원에서 경찰청으로 통보해 적성검사로 면허 취소 여부를 판단하지만 병원에서 통보하지 않으면 적발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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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운전자, 도심 100㎞ 질주… ‘면허 검증’ 문제많다
입력 2016-08-02 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