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작가 선무 개인전 ‘그것이 행복이라면’

입력 2016-08-02 21:47
'천사의 고민'. 캔버스에 유채. 2012년 작.루프 제공

딱 봐도 탈북 작가 전시 냄새가 난다. 1층엔 북한과 남한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각각 빨간색, 파란색 글씨로 쓴 카드가 만국기처럼 펄럭인다. 아래층엔 북한의 선전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회화가 곳곳에 진열돼 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고 있는 탈북 작가 선무(線無)의 개인전 ‘그것이 행복이라면’은 이처럼 형식과 내용에서 남한 작가의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북한의 체제 선전에 사용되던 포스터 형식을 차용하고, 글씨체마저 불온하게 느껴지는 삐라의 인쇄체를 사용한다.

선무는 1998년 가족들에게 돈과 식량을 가져다주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그게 영영 생이별이 됐다. 이후 중국·라오스·태국을 거쳐 2002년 한국에 들어왔다. 북한에서 미대생이었다는 선무는 한국에 들어와 홍익대 회화과(2007)와 동대학원(2009)을 졸업하고 작가가 됐다.

전시 작품은 경계의 삶을 사는 그가 느끼는 거시적인 이데올로기의 차이 뿐 아니라 미시적인 일상의 삶마저 가로막고 있는 차이들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만국기 같은 설치 작품 ‘코리아 풍경’에 쓴 쓴 글씨를 보자. 모택동, 자력갱생 등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단어가 있는가하면, 애견호텔, 스트레스, 선후배 등 남한 사회에서 처음 접한 일상의 단어들도 있다. 말하자면 선무의 삶을 보여주는 일종의 ‘문자 다큐’이다.

그의 작업은 분단이라는 현재 혹은 과거 저편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체제 모순이 극복이 될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순수한 표정의 아기가 ‘SOUTH(남)’와 ‘NORTH(북)’라고 쓰인 그림책을 펴들고 갸우뚱하는 모습이 그런 예다. 남한 소주 ‘참이슬’과 북한 맥주 ‘대동강 맥주’는 섞여져 ‘통일 폭탄주’가 된다.

북한에 남은 가족이 걱정돼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활동하는 그는 ‘선(휴전선)’이 없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선무라는 예명을 쓴다. 그럼에도 지난해 베이징에서 준비했던 개인전은 중국 공안에 의해 저지돼 무산됐다. 그런 과정을 담은, 애덤 쇼버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I am Sun mu(나는 선무다)’에 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애절하다.

전시에는 기존의 선전포스터 양식을 벗어나 설치 작품, 전통 수묵화를 보는 듯한 유화, 종이 공예 작품 등 새로운 시도들이 등장해 변화하는 화가로서의 선무를 보여준다. 지난달 27일 정전 협정일에 맞춰 열렸던 전시는 28일까지 이어진다(02-3141-1377).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