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나의 운명-남현희] ‘엄마 검객’ 딸 위해 金을 찌른다

입력 2016-08-02 04:24
한국 여자 펜싱 플뢰레의 남현희가 2014년 8월 20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챔피언하우스에서 훈련하는 모습. 2013년 4월 출산 후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두 개의 메달(단체전 금·개인전 동)을 따내며 건재함을 과시했던 남현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노린다. 국민일보DB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으로 올림픽 피스트(펜싱 코트)에 오른 게 2004년. 1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땅콩 검객’은 ‘엄마 검객’으로 변신했다. 세 차례 나선 올림픽에서 동메달, 은메달을 따냈다. 금메달만 목에 걸지 못했다. 여자 플뢰레의 남현희(35·157㎝·44㎏).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사랑하는 딸에게 약속했다, 하늘이 내려준다는 금메달을 이번엔 꼭 가져오겠다고.

남현희는 2004 아테네올림픽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8강에 오르며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쟁쟁한 우승 후보들을 잇따라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발렌티나 베잘리(42·이탈리아)와 맞붙어 아쉽게 5대 6으로 역전패했다. 남현희는 6개의 올림픽(1996∼2012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펜싱 선수인 베잘리와 명승부를 벌여 전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깊이 각인시켰다. 2012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도 ‘숙적’ 베잘리를 만나 12대 13으로 패한 남현희는 여자 플뢰레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내 아쉬움을 달랬다.

남현희는 2011년 11월 사이클 선수 공효석(30)과 결혼해 2013년 4월 딸 공하이 양을 얻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무릎 연골은 닳아 없어졌고, 악력이 약해져 검을 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남현희는 다시 몸을 만들어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나섰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재기를 알렸다. 지난 3월엔 쿠바에서 열린 국제펜싱연맹(FIE) 플뢰레 그랑프리에선 동메달을 획득, 자력으로 리우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올림픽에선 돌아가면서 남자 단체 한 종목과 여자 단체 한 종목이 제외되는데, 리우올림픽에선 남자 사브르와 여자 플뢰레가 단체전 종목에서 빠졌다. 따라서 남현희는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만 출전한다.

남현희가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선수는 세계랭킹 1위 아리안나 에리고(28·이탈리아)다. 베잘리는 지난 4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남자 사브르와 여자 플뢰레 단체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퇴했다. 에리고는 키가 180㎝에 달하는 거구다. 힘과 스피드 모두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런던올림픽 여자 플뢰레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따냈다. 2013, 2014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지금까지 남현희는 에리고와 7차례 맞붙어 1승6패로 열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5월 서울에서 열린 SK텔레콤 그랑프리 개인전 결승에서 갓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발탁된 에리고를 15대 3로 꺾은 게 유일한 승리다. 지난 3월 쿠바 그랑프리 준결승전에선 8대 15로 패했다. 그러나 펜상은 정신력과 당일 컨디션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과를 예단할 순 없다.

한국 펜싱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냈다. 이탈리아(금 3·은 2·동 2)에 이어 펜싱 종목에서 종합 2위에 오른 것이다. 펜싱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은 리우올림픽에서도 선전을 이어간다는 각오다.

조희제 펜싱 대표팀 총감독은 “전 종목 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리우올림픽을 대비해 특별훈련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댄싱 트레이닝’이다. 한국 펜싱 대표팀은 최신가요 리듬에 맞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연마했다. 남현희는 누구보다 이 훈련을 열심히 소화했다.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30일(현지시간) 갈레앙 국제공항을 통해 리우데자네이루에 입성한 남현희는 “올림픽에서 마지막 경기가 끝나는 순간에 대한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이제 이런 큰 시합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며 “몸과 마음을 모두 긍정적인 상태로 만들어서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힘든 일이 있어도 모든 것에는 답이 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게 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