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7시 경기도 부천시 석천로 부천체육관 야외 농구장 앞. ‘꼽이의 심야식당’이라고 써진 ‘밥차’가 눈에 들어왔다. 밥차 앞에 있는 26.4㎡(8평) 공간엔 식사를 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청소년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찜통 같은 더위였지만 청소년들은 개의치 않았다.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가하면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신나게 쳤다. 한 여고생은 자원봉사자 신금희(50·약대감리교회) 권사를 보자마자 “이모 보고 싶었어요”라며 달려가 포옹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꼽이의 심야식당은 지역 청소년의 놀이터와 같은 곳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 6∼10시 청소년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 짜장밥 떡볶이 소고기덮밥 등 메뉴는 매번 다르다. 매주 100여명의 청소년이 이곳을 찾는다. 꼽이는 2013년 약대동에서 ‘꼽사리영화제’를 개최할 때 주민들이 만든 캐릭터의 이름이다.
경기도 부천 약대동에 있는 새롬교회(이원돈 목사) 약대중앙교회(이세광 목사) 약대감리교회(송규의 목사) 성도들은 청소년을 섬기기 위해 이 식당을 만들었다. 각각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예장합동,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으로 교단은 다르지만 초교파적으로 힘을 모았다. 매주 수십 명의 성도들이 교회별로 돌아가며 장보기, 음식 만들기, 배식 등의 봉사를 한다.
이들 교회는 심야식당을 시작할 때 전도를 앞세우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퍼주는 식당이 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교회 직분대신 ‘짱이모’ ‘귀요미’ ‘맥가이버’ ‘이쁜이모’ 등 별칭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매주 고정 스태프 10여명 외에도 10여명의 봉사자들이 비정기적으로 참여한다.
오세향(53) 심야식당 대표는 “2년 전 일어난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어른으로서 우리 아이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며 “아이들에게 사랑과 정을 주고 싶은 마음에 겁 없이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원돈 목사의 사모이자 새롬가정지원센터 대표로 일하는 오 대표는 2014년 센터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지방의 한 교회에 출석한 김모 집사라며 크리스천으로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데 무슨 일을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오 대표는 “저도 모르게 ‘청소년을 섬기는 사역이 어떠시냐’고 했는데 흔쾌히 수락하며 밥차와 재정 등을 지원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신 권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신 권사가 “여러 교회가 연합한다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제안해 함께할 수 있는 교회를 물색했다. 3개 교회 목회자들이 동참할 뜻을 밝히며 재정도 지원키로 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이곳에 들르는 청소년들은 봉사자들과 격의 없이 친해지자 교사나 부모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고민도 털어놨다. 어른의 관심과 손길이 절실한 학생들도 많았다.
신 권사는 “밥만 먹고 가던 학생이 하루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위로해달라고 했다”며 “아이들에겐 항상 ‘너희는 가장 귀하고 사랑스런 존재’라고 이야기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매주 금요일이면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밥 먹는 모습만 봐도 피로가 싹 풀린다. 저를 통해 한 명이라도 하나님을 알게 되면 좋겠다”라며 웃었다.
심야식당 스태프들은 식사 제공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방송반, 격투기 등의 동아리 활동도 시작했다. 방송반 학생들은 스태프의 지도를 받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다음 달 청소년 영화축제를 개최한다. 또 ‘조손 짝궁’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과 어르신이 함께 식사하고 영화를 보는 등 세대가 적극 소통하도록 지원한다.
심야식당 학생 대표 김수경(18·중흥고)양은 “방송반에서 친구들과 야간 촬영을 하며 영화축제를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며 “친구도 많이 생겨서 이곳에 놀러오는 게 즐겁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원돈 목사는 “심야식당이 청소년의 급식식당을 뛰어넘어 마을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곳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면서 “아이들을 위해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세광 목사는 “약대동 10여명의 목회자들이 2012년 말 ‘약대동목회자협의회’를 만들어 크고 작은 행사 등에 협력하고 있다”며 “심야식당 외에도 매달 어려운 사람을 위한 재정지원, 아파트 공동전도 등을 하며 개교회 이름보다 ‘복음’을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아. 이어 “지역 교회들이 경쟁하지 않고 연합하니 성도들이 좋아하고 주민들도 좋게 본다”고 덧붙였다.
부천=글·사진 김아영 기자
부천 3개 교회 아름다운 연합, 다음세대에 ‘따뜻한 밥상’
입력 2016-08-01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