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81> 노스탤지어 영화

입력 2016-08-01 18:23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포스터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마침 묵었던 호텔은 ‘노스탤지어’를 주제로 옛 유럽의 정취를 고스란히 재현한 곳이었다. 그 당시에 살아본 것은 물론 아니고,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것 말고는 그런 곳에 가본 적도 없지만 희한하게도 어떤 그리움 같은 노스탤지어가 솟아올랐다. 노스탤지어를 이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영화다. 우리를 노스탤지어로 이끄는 영화들은 많지만 그중에서 우디 앨런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우선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1972, 허버트 로스 감독)’. 앨런 각본·주연의 이 영화는 시작부터 흑백 화면이 갑자기 등장한다. ‘카사블랑카(1942)’의 마지막 장면이다. 앨런은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과 영화 주인공 릭(험프리 보가트)을 동일시하는 영화 기고가로 나온다. 영화광인 극중 앨런의 집은 옛 할리우드 황금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온갖 희귀한 영화 포스터와 소품들로 장식돼 있다.

다음은 ‘미드나이트 인 파리(2011)’다. 앨런 각본·감독. 파리 여행 중인 미국의 영화 각본가가 타임 슬립을 해 밤마다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 1차대전 후 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들과 만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등. 문학과 ‘좋았던 시절’의 파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향연인 영화다.

그리고 최근 영화 중 노스탤지어의 정점을 찍은 것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이다. 유럽의 가상국가를 배경으로 호화로웠던 옛 유럽의 영화와 격조를 그대로 간직한,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쇠락해가는 호텔이 무대인 이 영화는 앤더슨 감독이 스테판 츠바이크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사족. 내가 들렀던 호텔도 규모는 작고 인테리어도 덜 사치스러웠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호텔 이름 역시 고풍스럽게도 넬슨 제독의 연인이었던 레이디 해밀턴에서 따왔다는 ‘해밀턴’이었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