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근로자 절반이 면세… ‘최저한세’ 필요

입력 2016-08-01 04:00

근로소득자의 절반 가까이는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초 ‘연말정산 대란’ 이후 정부가 몸을 사리면서 각종 공제와 비과세·감면을 확대한 영향이다. 세원 확보와 재정 확충을 위해서는 감세 혜택을 줄이는 게 맞지만 저소득층의 조세 저항에 부닥칠 게 뻔해 정부는 조세 개혁을 머뭇거리고 있다. 고소득자의 자산과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소득세 면세자 비율 축소 명분을 마련하거나 소득이 있으면 일정 액수의 세금을 의무적으로 내게 하는 최저한세(最低限稅)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31일 재정포럼 최신호에 게재한 ‘연말정산 대란과 보완 대책, 그리고 남은 과제들’ 보고서를 보면 2014년 귀속소득(지난해 초 연말정산) 기준 근로소득세 과세미달자 비율은 48.1%였다. 전체 근로소득자 1668만명 중 802만명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2005년 소득 기준으로는 48.7%였다가 매년 2% 포인트 정도 줄어 2013년 소득 기준으로는 32.4%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지난해의 이른바 연말정산 파동으로 도루묵이 됐다.

박근혜정부 첫 해인 2013년 세법개정(2014년 소득부터 적용)이 이뤄져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 등 소득공제 항목을 세액공제로 전환했다. 소득세의 재분배 기능은 강화됐지만 중산층 이하 근로자의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제 혜택을 확대해 면세자 비율이 45.7%로 올라갔다.

개정 세법이 처음 적용된 지난해 연말정산(2014년치)에서는 정부 설명과 달리 5500만원 이하 연봉자의 소득세가 느는 경우가 속출했다. 불만이 폭주하자 정부는 보완책을 내놓고 자녀세액공제 등 공제를 더 확대했다. 그 결과 면세자 비율은 48.1%까지 다시 늘었다.

한국의 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높다. 미국의 경우 2013년 소득 기준으로 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35.8%였다. 캐나다의 소득세 면세자 비율도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 33.5%였다. 호주는 2013/2014 과세연도 기준으로 25.1%, 영국은 2014/2015 과세연도 기준으로 2.9% 수준이었다.

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낮추기 위해 최저한세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총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을 넘는 근로소득자라면 월 1만원 혹은 총급여의 1% 등 최소한의 금액을 소득세로 내도록 하는 ‘근로소득세 최저한세’ 도입을 제안했다.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 원칙에 따라 소득자 모두가 최소한의 납세 의무를 부담해야 정부에 복지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정당성을 얻고, 사회적 논의도 본격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론도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대학원장은 "최저한세를 도입하면 저소득층 중심으로 증세가 되는 셈"이라며 "과세 불평등 논란에 부딪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명목임금 상승으로 매년 2% 포인트 정도 줄어들게 돼 있다"며 "인위적으로 면세자 비율을 줄이려다가 조세 저항에 부딪히는 것보다는 비과세·감면과 공제를 더 늘리지 않고 자연 감소를 기다리는 게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고소득자에 과세를 늘리면서 동시에 면세자 비율을 줄이는 식으로 세법개정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소득자의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는 해마다 완화되는 추세다. 2010년 이후 해마다 중소기업 가업상속 공제가 확대됐고, 가업상속재산 공제도 확대됐다.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는 여전히 미미하다. 2014년 말 기준 전체 상장주식 개인투자자 중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은 0.1%도 되지 않았다.

김 연구위원은 "과세미달자(면세자) 비율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표준세액공제액을 축소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준세액공제는 연말정산 때 특별세액공제(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나 특별소득공제(주택자금 소득공제 등)를 받지 않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기본 공제다. 주로 혼자 사는 싱글들이 혜택을 받는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연말정산 보완대책에서 표준세액공제 금액을 12만원에서 13만원으로 늘렸다. 김 연구위원의 분석을 보면 표준세액공제액을 1만원 줄이면 면세자 비율은 1.1% 포인트 줄어든다.

■최저한세
근로소득이 있는 납세자에게 부과하는 최소한의 세금. 최저임금이나 기본소득처럼 의무적으로 최소액을 세금으로 내게 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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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