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여검사’ 무죄였지만… 김영란법 시행되면 대가성 없는 금품 수수도 형사처벌

입력 2016-08-01 00:30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한 국민적인 환영 여론은 뇌물과 알선수재 등 기존 형법의 그물을 빠져나가던 부정부패가 앞으로는 근절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공직자가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명확한데도 대가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31일 김영란법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처벌을 떠나 부정부패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샤넬 가방값 보내줘요’, 그땐 무죄

김영란법을 촉발시킨 ‘벤츠 여검사’ 이모(40)씨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씨는 검사 재직 시절 내연남인 변호사로부터 특정 사건의 수사를 담당 검사에게 재촉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수많은 금품을 수수해 구속 기소됐었다. 벤츠 승용차뿐 아니라 월세 300만원의 아파트, 다이아몬드 반지, 까르띠에 시계, 모피 롱코트, 샤넬 핸드백, 골프채, 내연남 로펌 명의의 신용카드 등을 받았다.

이씨는 내연남에게 “그 사건 담당 검사가 마침 내 임관 동기더라”며 알아봐 주겠다는 의사를 표했고, 실제로 담당 검사에게 “신속하게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후 내연남에게는 “진짜 오늘 샤넬 가방값 보내줘요∼ 540만원”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내연남에 대한 호의였을 뿐 대가를 바란 일은 아니라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벤츠도 ‘사랑의 정표’였다는 이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건설업자로부터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공개 지목되며 ‘스폰서 검사’ 논란을 빚었던 한승철(53) 전 검사장도 무죄였다. 재판부는 그가 금품 100만원을 전달받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향응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제공받은 향응도 사건 청탁 명목이라는 점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대가성 판단이 결국 무죄의 이유였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로부터 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김두우(60) 전 청와대 홍보수석 역시 무죄였다. 다만 그가 아무런 선물도 안 받은 건 아니었다. 그가 로비스트로부터 드라이버 골프채 1개를 받은 사실은 끝까지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가 이를 “단순한 선물”로 봤기 때문에 김 전 수석은 유죄를 피할 수 있었다.

처벌 아닌 보호하려는 법

법조계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었다면 벤츠 여검사 등에 대해 완전한 무죄가 선고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크다. 김영란법은 직무관련성·대가성이 없어도 청탁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기존 형사법의 사각지대를 축소했다. 장차 도움받을 일을 생각하고 보험처럼 제공되던 ‘떡값’ ‘촌지’ ‘성의표시’ 등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수사기관들은 신법이 낳을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김영란법 사건의 처리 절차·기준을 마련하는 연구를 시작한 지 오래다. 경찰청도 지난달부터 김영란법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헌재는 김영란법의 합헌 결정문에 세 가지 취지가 스며 있다고 설명한다.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부정청탁 관행을 근절하고, 모든 권력을 언론이 견제토록 해 사회통합에 이바지하며, 공직자 등이 금품의 유혹에서 벗어나 떳떳하게 직무수행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공직자를 부정청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김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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