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백두대간 생태축… 축구장 107개 규모 ‘맨살’

입력 2016-08-01 00:05
지난해 10월 덕유산 육십령 일대가 채석광산 때문에 산 중앙부가 통째로 잘려나간 채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다(왼쪽사진). 같은 기간 녹색연합 관계자가 최대 120㎝ 깊이까지 침식이 이뤄진 육십령-삿갓재 구간에서 훼손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많은 관광객과 소홀한 관리 탓에 ‘백두대간보호구역’에 국제축구경기장 107배 면적의 ‘맨땅’이 노출된 상태로 드러났다. 정부가 백두대간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관리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연합은 지표식물이 하나도 없는 맨땅인 ‘나지(裸地)’가 백두대간 지리산 천왕봉부터 강원도 진부령의 ‘마루금 등산로(능선을 따라 난 등산로)’ 일대에만 76만9566㎡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31일 밝혔다. 2001년 63만3975㎡보다 약 21% 넓어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지정 축구경기장 국제규격(7140㎡)의 107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로 국립공원 7곳, 자연생태계보전지역 2곳, 천연기념물보호구역 3곳 등을 망라하는 우리나라 핵심 생태축이다. 우리나라 야생동물 564종 중 제주도 등 일부지역 고유종을 제외한 대부분이 여기 서식한다. 정부는 이런 가치를 인정해 2003년 ‘백두대간보호에관한법률’을 따로 제정하고 2005년 백두대간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9월부터 두 달간 백두대간보호구역 지리산 천왕봉부터 강원도 진부령의 마루금 등산로 중 군사구역인 향로봉-진부령 구간을 제외한 총 46개 구간(732.92㎞)을 200m 간격마다 조사했다.

조사 결과 평균 등산로 폭이 2001년보다 14%, 평균 나지 노출폭은 21.8% 증가했다. 조사 지역에서 뿌리노출은 42.4%(1539지점), 암반노출은 24.9%(906지점) 확인됐다.

특히 2001년 대비 노폭, 나지 노출폭, 침식 깊이 등이 50% 이상 증가해 생태 파괴가 심화된 곳은 조령-하늘재 구간과 궤방령-작점고개 구간이었다. 노폭과 나지폭이 가장 넓은 구간은 지리산 노고단-정령치였다. 이 구간은 2001년 당시에도 훼손이 매우 심각한 곳으로 꼽혔다.

침식이 가장 심각한 곳은 평균 24.7㎝ 깊이인 덕유산 육십령-삿갓재 구간이었다. 뿌리노출과 암석노출이 가장 심각한 곳은 덕유산의 삿갓재-빼재 구간으로 뿌리노출이 79곳, 암석노출은 64곳에서 확인됐다.

다만 평균 11.8㎝였던 침식 깊이는 10.8㎝로 1㎝ 줄었다. 등산로 폭이 1m 이하, 침식 깊이 5㎝ 이하에 지표식물이 살아있는 건강한 구간은 전체 측점의 19.2%(699지점)에 불과했다. 녹색연합은 늘어나는 등산객에 비해 부실한 관리를 훼손의 원인으로 꼽았다. 땅을 밟을 때 발생하는 ‘답압’이 지속되면서 지표식물은 줄어들고 땅속 공기층이 사라져 토양은 물이 스며들 수 없는 시멘트 같은 상태로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땅 위로 ‘물골’이 생기고 여름철 집중호우와 겨울철 결빙·해빙 과정을 거치면 산사태 위험은 가중된다.

녹색연합은 정부 정책이 오히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마루금 등산로의 65%를 관리하는 산림청 전담 인력은 10년 사이 14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정부는 14∼18m의 터널형 이동통로만 연결해 놓고 ‘생태축 복원’으로 홍보한다”며 “이화령 옛길처럼 터널이 생겨 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 곳의 아스팔트를 걷어내 산림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연합은 백두대간보호구역 전담조직을 만들어 통합관리계획을 세우고 궁극적으로 국가 보호지역의 등산로 예약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